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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입력
2020.04.1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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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겁 없이 잘나가고 법 위에서 사람을 죽이던 자였는데, 그 마지막이 측은하다.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는 성소 안 제단을 붙들고 나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그의 이름은 요압. 유명한 다윗 왕의 오른팔이며 군대 장관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일종의 치외법권 영역이라 할 수 있던 성소 안에 들어가 제단을 붙든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남의 목숨을 앗아가던 자였는데, 자기는 죽기 싫어 질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권력자 다윗 왕이 죽고 나니 속된말로 끈이 떨어졌다. 그러기에 힘 있을 때 잘했어야지.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아버지’인 요압은 다윗의 조카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에는 그 혈기가 그를 빼어난 장수로 만들어 주었다. 다윗이 가장 원할 때, 가장 먼저 일어나 적에게 돌진했던 용장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마저 탈환했다. 어찌 다윗이 예뻐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그런데 극한 전쟁터에서는 유용한 장수였지만 나라를 평정하고 나니 이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지나치게 피 흘리기를 즐겨 했으며, 무엇보다도 다윗 왕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컸다. 자기보다 왕에게 더 가까이 서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고야 말았다. 나중에는 그를 부리던 다윗 왕에게도 섬뜩한 괴물이 되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그래도 아들인지라 다윗은 애타게 군대장관 요압에게 읍소를 했다. 하지만 요압의 피는 한겨울 칼바람이었다. 나무에 걸려 버둥거리던 압살롬의 심장을 창으로 뚫어버렸다. 심지어 이 괴물은 아들을 잃어 애곡하던 다윗 앞에 당당히 서서 왕이 이러시면 안 된다며 몰아붙이기 까지 했다. 자기 아들을 살해한 자신의 장수 앞에 다윗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기 나라를 배신하고 대신 다윗에게 충성하겠다고 아브넬이 찾아왔다. 다윗에게는 정치적 과업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요압이 아브넬과 조용히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성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그의 배를 찔러 죽였다. 이쯤 되면 요압의 집착은 다윗에게 거의 공포였다. 자기만 사랑해 달라는 이 괴물을 때어놓자니 해코지가 두렵고 가까이 두자니 소름끼친다. 내치지는 못하고 다윗은 이렇게 요압을 저주했다. “나와 나의 나라는 주님 앞에 아무 죄가 없다. 오직 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 아버지의 온 집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 요압의 집안에서는, 고름을 흘리는 병자와, 칼을 맞아 죽는 자들과, 굶어 죽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요압의 광기는 더 현란해 졌다. 다윗이 요압을 퇴진시키고 다른 친척인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자 그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성경은 기록을 남겼다. “요압은 아마사에게 ‘형님, 평안하시오?’ 하고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턱수염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요압이 다른 손으로 칼을 빼어 잡았는데, 아마사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요압이 그 칼로 아마사의 배를 찔러서, 그의 창자가 땅바닥에 쏟아지게 하니, 다시 찌를 필요도 없이 아마사가 죽었다.” 다윗이 충견인 줄 알고 키웠더니 광견이었다.

역사 속 영광의 다윗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예루살렘이 ‘다윗 성’이라 불릴 만큼 그는 이스라엘의 빛나는 존재였다. 그 빛난 영광 뒤에 짙은 그림자도 같이 있었다. 결국 다윗은 죽으면서 차기 왕인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 놈이 편히 죽지 못하게 하라고. 마침 요압은 솔로몬의 대권 경쟁자였던 아도니아를 지지한 바람에, 솔로몬이 왕이 되자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다가 제단 뿔을 붙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으면서 자기는 살고 싶었나 보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장군이었지만 인생의 끝이 참 비참하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의 피를 가차 없이 흘렸다. 그를 보면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52)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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