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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의 도시연서] 투표소가 된 행정복지센터, 경로당, 초등학교

입력
2020.04.14 18:00
수정
2020.04.14 18:2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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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하남 미사1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하남 미사1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교통이 편리하고, 장애인의 접근이 쉽고 적절한 면적을 갖고 있으면 어디든 투표소가 될 수 있다. 세차장, 화랑, 예식장과 같은 이색 투표소가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투표소는 주로 공공성을 띤 장소에 만들어진다. 평소에는 다른 용도로 쓰이다가 선거 때가 되면 기꺼이 투표소로 변신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행정복지센터, 경로당, 초등학교다.

투표소로 행정복지센터가 첫손에 꼽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행정복지센터는 동마다 하나씩 있는,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행정기관이다. 평상시 주민과 행정이 만나는 최일선의 역할을 하던 이곳은 선거 때가 되면 투표소로 바뀐다. 하지만 아직도 행정복지센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 행정복지센터가 어디냐고 물으면, 주민센터라 말해 주면 된다. 주민센터는 또 어디냐고 물으면 동사무소라 말해 주면 된다. 1955년부터 사용하던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주민센터로 바뀐 건 2007년이다. 행자부(현 행정안전부)는 “동사무소가 보건, 복지, 문화, 고용, 생활체육 등 주민생활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통합 서비스 기관으로 전환됨에 따라 새 기능에 걸맞은 명칭을 부여했다”며 명칭 개정의 이유를 밝혔다. 주민센터라는 이름이 동사무소보다 새 기능에 더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동사무소는 주민센터가 됐다.

2016년부터 주민센터는 행정복지센터가 됐다.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꿨을 때는 실체는 변함없이 간판만 바꿨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2016년의 행자부는 그때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 핵심은 ‘복지 허브화’ 기능이다. 저출산, 고령화 등에 맞춰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동사무소, 아니 주민센터의 기능을 대폭 바꿀 것이며, 동사무소, 아니 주민센터가 행정복지센터로 바뀌고 나면 우리 이웃의 소외된 분들에게 편리하고 효과적인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행정복지센터가 잘 정착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도 동사무소라 부를 예정이다.

경로당을 투표소로 사용한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시골이나 한적한 마을이 떠오르지만, 투표소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경로당은 대단지 고층 아파트 안에 있는 경로당이다. 일정 규모가 넘는 아파트는 경로당을 갖춰야 하니, 대부분의 고층 아파트는 경로당을 갖고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투표소를 설치할 경우, 단지마다 있고 노인의 접근도 쉬운 경로당은 투표장소로 선호된다. 경로당은 행정복지센터와 같은 공공시설은 아니지만, 법률에 의해 세금이 지원된다는 점에서 공공의 성격을 갖는다. 노인복지법은 경로당에 전기, 가스, 수도요금, 쌀값의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운영 보조와 더불어 쌀값을 지원하는 것에 눈길이 간다.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어도 함께 밥해 먹는 것만으로도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해 왔던 경로당은 요즘 사람을 못 구해 어려움을 겪는다. 고령사회에 노인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주성이 약하고 평생 사회활동을 했던 노인들에게, 같은 동네에 사는 노인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모여서 밥해 먹으라 하기는 어렵다. 경로당은 변신이 필요하다.

초등학교는 유래가 깊은 투표소이다. 근린 주구론으로 많은 도시계획가에게 영감을 준 클래런스 페리는 초등학교를 시민을 위한 진정한 시설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정치집회, 투표장, 녹지, 스포츠시설, 봉사활동, 도서관 등 지역 커뮤니티의 핵심 장소로 활용된다. 우리 법률에는 초등학교의 통학 거리를 1,500m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니, 웬만한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한두 개씩 있다. 게다가 학교는 넓은 운동장과 운동 시설, 많은 교실, 체육관, 도서관, 정원 등을 갖추고 있으니 잘만 활용하면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하지만 우리 도시에서 초등학교는 투표장으로는 사용되지만 평소에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초등학교는 마을에 개방적이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 운동장을 찾았고, 작은 숲을 만들고 담장을 허문 학교는 학교숲을 동네 주민들과 공유했다. 하지만 마을에 개방된 학교의 관리 업무를 지역사회와 잘 나누지 않은 곳은 개방으로 인해 교직원들의 업무가 증가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정적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몇 차례 일어나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학교에 비난 여론이 일었다. 담장을 허물었던 학교는 다시 담장을 쌓았고,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다. 출입도 어려운 학교를 지역사회에서 함께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곳이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는다. 소도시나 시골의 초등학교는 지역 주민에게 개방된 경우가 많다. 범죄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대도시에서는 초등학교 개방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막아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 오늘 나의 투표소에는 우리 동네 유일의 도서관이 있었다. 출입이 통제된 지 2년이 되어 간다. 오랜만에 문이 열린 학교로 투표하러 가는 길이 아쉽다.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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