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작은 아씨들’은 흔히 ‘뉴 클래식’ 영화라 불린다. 단연 돋보이는 건 현대적인 연출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뉴 클래식이란 이름을 뒷받침할만한 세련된 선곡이 돋보인다. ‘작은 아씨들’이 아카데미(제92회) 음악상 후보로 지명될 수 있었던 밑바탕이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선율은 할리우드의 유명 음악 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팔라가 골랐다. 데스팔라는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바 있다. 데스팔라의 선곡은 ‘여운 가득한 음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관객들이 원작소설 못지 않게 영화 삽입곡(OST) 음반을 사서 아가씨들에 대한 추억에 젖어 드는 이유다.
언니와 무도회장에 왔지만 치마를 태워먹는 바람에 춤출 수 없던 둘째 조 마치(시얼샤 로넌 분). 그런 마치에게 다가온 남자 로리 로렌스(티모시 샬라메)는 “좋은 방법이 있다”더니 건물 밖으로 나가 춤을 청한다. 왈츠에다 장난기 가득한 막춤을 더한 이들 뒤엔 드보르작의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칸’ 3악장이 깔렸다. 목가적이고 경쾌한 선율이 조 마치의 발랄함과 어울린다.
‘아메리칸’이란 제목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드보르작이 1892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만들었다.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시기도 잘 들어맞는다. 류태형 클래식 평론가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곡가의 아련함이 깔려 있지만, 신대륙 원주민의 음악과 흑인 영가 같은 이질적 장르가 섞여 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말했다. 영화에선 널리 알려진 2악장 대신, 상대적으로 생소한 3악장이 쓰였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셋째 베스 마치(엘리자 스캔런)가 로렌스네 저택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슈만의 작품들이다. 병으로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둔 베스는 46세에 요절한 슈만과 닮았다. 이중 ‘나비’는 슈만의 초기 음악세계를 상징하는 곡으로 꼽힌다. 나비의 섬세한 날갯짓을 떠올리게 만드는 맑은 선율이 인상적이다.
또 다른 곡 ‘어린이정경’은 슈만이 동심을 표현한 곡이다. 영화에선 일찍 딸을 잃은 할아버지 로렌스가 베스의 연주를 듣고 딸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슈만이 연인 클라라로부터 “나는 당신에게 어린아이처럼 보일 때가 많다”는 편지를 받고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막바지 무렵 마치 가족을 방문한 프리드리히(루이 가렐)가 죽은 베스를 추모하는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2악장이다. ‘월광(14번)’ ‘열정(23번)’과 더불어 베토벤 소나타의 대표 곡이다.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는 “비창의 2악장 선율은 처음 듣는 사람도 한번에 반할만큼 아름답고, 짧은 곡임에도 변화무쌍한 전개를 갖고 있어 한편의 서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제곡 ‘작은아씨들(Little Women)’은 데스팔라가 직접 작곡했다. 밝고 힘찬 악센트와 빠른 박자로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네 아가씨를 표현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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