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ㆍ사참위 올해 결론 낼 계획이나
코로나ㆍ총선으로 관심도 낮아져
‘팽목식당: 세월호 유가족이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지난 9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 1491번지, 팽목항. 바다와 가까운 항구 한 켠에 놓인 컨테이너가 유독 눈에 띄었다. ‘누군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안내문이 걸린 현관문을 두드리자 식당 문을 열고 나온 주인은 대뜸 “어서 들어오세요. 밥은? 드셨어요?”라고 식사 안부부터 물었다.
식당을 지키는 고영환(52)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8반 우재 군의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고씨는 사고 4일 만에 우재를 품에 안았지만, 여전히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수습되는 아이들의 소식을 부모에게 알리느라, 사고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보니 5년 6개월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만난 고씨는 “2014년 4월에서 멈춘 듯했던 시간도 어느덧 2020년에 닿았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방문객 식사ㆍ차 대접…되레 추모객 위로
15평 남짓 컨테이너에 꾸려진 ‘가족식당’ 안에는 널찍한 주방과 식탁 대여섯 개가 놓여 있다. 고씨는 이곳에 살면서 팽목항을 찾는 추모객들에게 식사와 차를 대접하고, 희생자들의 사진 등이 기록된 식당 옆 기억관으로 안내한다. 많게는 하루 수십명을 맞는다. 처음엔 김치찌개 하나 끓이는 것조차 서툴렀는데 이제는 못하는 요리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단다. 카레, 수육, 북엇국 등이 식당의 대표 메뉴. 식당 곳곳에는 ‘우재 아버님이 해주신 많은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위로 받았다’는 감사의 편지가 붙어 있다.
고씨는 2014년 10월 경기 안산에 아내와 딸, 직장을 남겨두고 팽목항으로 내려왔다. 황폐해진 심신을 이끌고 팽목항에 자리 잡았지만, 돌아오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집 앞에서 매일 장례를 치르면 누가 좋아하겠느냐”는 주민까지 있었다. 고씨는 이해를 강요하는 대신 어선에 올라 멸치잡이를 돕고, 대파 수확을 거들며 주민들과 마음을 텄다. 고씨는 “처음엔 주민들을 도울 방법이 없어 많은 고민을 했다”며 “기계 고치는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연장을 빌려다가 고장 난 어선 이곳 저곳을 고쳐주다 보니 누구보다 아픔을 잘 이해해주는 친한 친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과 마음을 튼 뒤에는 방문객들에게 눈을 돌렸다.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을 폄하하는 보수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각양각색의 방문객들과 맞닥뜨리지만, 똑같이 아픈 말로 응수하는 대신 그들의 외로운 구석을 찾아 위로하는 법을 터득했다. “5년여간 별일을 다 겪었죠. 처음엔 당국 관계자들이나 심지어는 사건을 쉽게 이야기하는 친구들과도 많이 싸웠고요. 벌써 대학 2학년생이 된 우재 동생도 오빠를 떠나 보내고 많이 방황했어요. 2016년부터 잠을 하루 1시간30분밖에 못 자면서 트라우마에 빠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의연해졌어요.”
◇신종 코로나ㆍ총선 등으로 발길 뜸해진 진도
팽목항에서 보낸 6년 가까운 세월 굴곡도 많았지만 고씨는 올해 유독 애가 탄다고 했다. 그는 “검찰 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올해 활동을 마친다고 한다”며 “사고 당시 정치인과 공무원 등에게 적용할 주요 혐의 공소시효가 1년밖에 남지 않아 올해 안에 어느 정도 결론이 나야 하는데 여태껏 잡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실제 직권남용,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공소 시효는 7년으로, 2014년 사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2021년에 끝이 난다. 또 고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진도군 등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더군다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4ㆍ15 총선 등이 겹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도 많이 줄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진도와 팽목항은 4월만 되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나, 이날 팽목항 일대는 신종 코로나 여파로 인적이 끊겨 스산한 모습이었다. 빨간 등대가 우뚝한 부두에는 오랜 시간 바닷바람에 해진 ‘팽목 기억관 건립’ 깃발만 나부끼고 있었다. 팽목항 앞에서 3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1)씨는 “지난해에는 3월부터 관광버스가 수십 대씩 와서 상춘객과 추모객으로 북적였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90% 가까이 방문객이 줄었다”고 했다.
세월호가 인양된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도 사정은 비슷했다. 세월호 방문객 출입을 관리하는 경비업체 직원 김준호(19)씨는 “코로나 전에는 평일에 100명 이상, 주말에는 200~300명 가까이 이곳을 찾았지만 2월부터 단체관광객이 뚝 끊겨 절반 넘게 줄었다”고 전했다.
◇고즈넉해진 팽목항에서 조용한 추모
단체 방문객이 줄어들자 올해 팽목항에는 조용한 추모의 발길이 더욱 눈에 띄었다. 경북 경주의 한 대학 앞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윤준호(42)씨는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팽목항을 찾았다고 했다. 윤씨는 “팽목항에 처음 와 봤는데, 너무 늦게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고로 스러진 아이들을 되새기니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것 아닌지 후회된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아내와 함께 왔다는 자영업자 안희근(43)씨도 “코로나로 방문객이 줄었다지만, 10년이든 100년이든 잊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 영향으로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 추모 행사도 다양해졌다. 4ㆍ16재단은 오는 16일 홈페이지 온라인 기억관에 추모 댓글을 올리는 행사를 진행한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추모의 글과 함께 해시태그 ‘#remember0416’(4월 16일을 기억하자)을 다는 운동도 이뤄지고 있다.
목포ㆍ진도=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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