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기준 전국 자가격리자 5만8,000여명
“왜 전화로 귀찮게” 짜증내고 심부름 ‘민폐형’에 난처
“해외선 사재기로 난린데….” 초콜릿 선물 ‘보답형’도
“ ‘생필품 박스’ 하나 더 주면 안 돼요?”
서울 A구청의 한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부 자가격리자들의 전화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13일 이 직원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상자 내용물은 온라인이나 전화 한 통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막무가내로 하나 더 달라고 자꾸 조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라면과 즉석밥, 생수 등을 담은 10만원(1인 기준) 상당의 생필품 박스는 1회에 한해 제공된다.
자가격리자 관리 기본은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지만, 해외 입국 자가격리자가 늘면서 이들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고충도 더해지고 있다. “내가 잘 하고 있는데, 왜 귀찮게 구느냐”는 자가격리자의 역정도 삼켜야 하고, “자는데 왜 전화를 해서 깨우느냐”는 타박까지 들어야 하는 실정이다.
B구청의 한 직원은 “프랑스에서 온 자가격리자에 오전에 전화했더니 ‘왜 자는데 깨우느냐’ 식으로 짜증을 냈다”며 “먼 데서 온 자가격리자의 경우 밤낮이 바뀌어 귀국 첫째 주에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하루 두 번 해야 하는 점검전화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며 난처해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귀국한 이들이 한국 시간에 적응하는 데 보통 1주일 정도 걸린다.
다양한 자가격리자 중에서도 압권은 공무원에게 심부름 시키는 자가격리자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자가격리자들이 많다 보니 그 중엔 직원에게 담배 심부름을 부탁하는 분도 있다”며 “직원들이 종종 이중으로 수고한다”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친 공무원들의 마음을 달래는 건 ‘보답형’ 자가격리자들이다. 주민에게 개인번호를 공개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최근 왕십리에 사는 한 자가격리자의 가족에게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에 쓴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란 문구를 인용, 나라의 도움으로 곤궁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코로나19를 이겨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의류 사업을 하는 김모(55)씨는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에서 딸과 아내가 귀국해 자가격리 중이었는데 ‘전화로 쓰레기 문 밖에다 내놓으면 버려주겠다’는 구청 직원의 세심한 배려에 아내가 너무 고마워했다”며 “해외에선 사재기로 난린데 이렇게 지원을 받으니 ‘가족이 보호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에 문자를 보냈다”고 말했다. 또 해외 입국 관련 자가격리자가 많은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이탈리아서 귀국한 주민을 담당했는데 ‘신경 써 줘 고맙다’며 현지서 구입한 초콜릿을 선물로 받은 게 기억 난다”고 했다.
투표를 위해 15일 자가격리자들의 일시 외출이 허용된 만큼, 코로나19 자가격리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1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기준 전국 자가격리자는 5만8,037명에 이른다. 이들 관리에 전국의 시ㆍ도ㆍ구 공무원 3만5,237명이 투입됐다. 공무원 한 명당 두 명씩 맡는 셈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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