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세계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상호 보완관계이다. 중국의 존재는 세계가 있음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드러내고, 세계는 중국이 있음으로써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국이 중국의 WTO 가입을 용인하고 중국이 자본주의 질서에 들어간 것도 완전한 세계를 위한 미국과 중국의 상호 필요성 때문이었다.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확산은 중국과 세계의 상호 보완관계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2001년 이후 중국과 세계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중국은 세계로부터 전염병 발원국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홀로 전염병과 사투를 벌였다. 중국의 전염병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선 지금 이제는 세계가 전염병에 노출되고 있다. 전염병은 국가와 민족, 인종을 나누지 않고 인류 공동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세계는 여전히 일국 위주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보건 관련 국제기구는 중국 편향이라는 공격을 받는 등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전염병 관련하여 여전히 지도력 부재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전염병 퇴치, 경제 회복, 자유무역과 국제협력의 계몽주의적 가치 수호 등 세 가지 사안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국내 전염병 상황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의 역할과 지도력이 발휘되기 쉽지 않은 국면이다, 이처럼 국제 지도력 부재의 공간에서 중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4월 8일 코로나19의 상징 도시가 되어버린 우한(武漢) 봉쇄를 70여 일 만에 풀었다. 물론 봉쇄 해제가 바이러스의 완전한 퇴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간헐적으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특히 국외 유입이 늘고 있다. 중국은 3개월 동안 공장 가동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우한 봉쇄 해제를 계기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신속한 조업 재개에 정책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세계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은 인도주의적 기치를 내걸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전염병 방역에서 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이나 지역에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은 일대일로 영향력 강화 등 세계 질서 지도력 확보를 위한 정치적 움직임으로 비판받고 있다. 물론 중국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이러스 ‘발원국’이자 ‘책임국’이라는 세계로부터의 비난에서 중국은 당분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세계의 비난에서 벗어나고 글로벌 선도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향한 능력과 태도 그리고 그에 걸맞은 국격(國格)을 갖춰야 한다. 현재 중국 정부는 127개 국가와 4개 국제조직에 마스크, 방호복, 진단 장비 등 물자를 공급했다. WHO에 2,000만달러를 지원하고 11개국에 의료 지원팀을 파견했다. 중국 지방정부와 기업, 민간단체도 100여개 국가 및 국제기구에 의료 물자를 전달했다. 이처럼 중국이 글로벌 전염병 방역에 지원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칭찬받을 일이다. 인류 공동의 전염병에 맞서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이웃을 돕는 태도 역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국격 차원에서 보면 방역 지원의 능력과 성실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중국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격을 드러내는 지도력은 권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매력이다. 매력은 신뢰에 기반하여 만들어진다. 세계는 바이러스 발원국에 대한 중국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지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책임 대국’다운 중국의 솔직한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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