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국내 희생자가 200명을 넘어섰다. 나는 집계표의 숫자 뒤에 가려진, 그들 임종의 비인간적 공간을 떠올릴 때마다 망연해진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 곁엔 전신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뿐이다. 방호복 너머에서 들려오는 의료진의 목소리와 겨우 드러낸 눈빛, 그리고 기계들이 내는 규칙적 소음이 세상 풍경의 전부일 테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환자는, 몸의 고통과 함께 병실의 차가운 외로움에 몸서리쳐야 한다. 그러니까 그들 죽음은 삶의 가장 소중한 관계 밖에서 벌어진다.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에 따라,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기도 힘들다. 희생자나 유족에게 이 마지막은 너무 잔인하다.
죽음은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세계는 시간의 날실로 짠 개인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서사의 마지막이, 삶의 관계성이 누락된 채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 바이러스보다 이 무의미성의 공포가 더 크다. 이들 희생자는 장차 코로나19 사태의 집합적 기호로만 남을 것이다.
해외 사망자는 벌써 10만명을 넘었다. 10만여개의 세계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탈리아에선 의료진도 100명 이상 희생됐다. 그들 죽음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떤 영웅적 서사와 사회적 찬사를 더한다 해도, 차가운 병실에서 일어나는 이 죽음의 무의미성을 위로할 수 없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희생자들은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살아 있는 우리의 행운은 그들의 불운에 빚지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뉴스 속의 타자가 아니다.
바이러스의 위협은 지위, 빈부, 나이,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무력한 개인이다. 그러니 지금은 비난과 질시를 잠시 멈추고 모두가 너그러움으로 연대해야 할 때다. 신천지 사태 때 우리 항공기를 공항에서 바로 돌려보내고, 여행객을 억류하고, 비자 면제를 중단했던 나라들을 기억한다. 거짓말처럼 이제 한국이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다. 우리를 홀대했던 그 나라들을 똑 같이 홀대하기 보다, 연민의 힘으로 감싸 안을 때다. 우아함으로 졸렬함을 이기는 게 가장 멋진 보복이다.
코로나19로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끊어지고 있다. 생활의 절박함이 곳곳에서 비명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 혼돈의 시절에 부디 모두 무사하길 바란다. 투병 중인 사람들은 가족이 기다리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돌아가 저녁 식탁에서 삶의 지난함과 행복의 사소함을 웃으며 얘기하길 바란다.
열악한 감정 노동의 현장이었던 콜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병상에 있는 분이 있다면 하루빨리 완쾌해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휴대폰 너머로 그 활기찬 목소리들이 전해져 올 때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일상이 회복되었다고 믿어도 될 것이다.
충주에선 여섯 살 아이가 확진 판정을 받았었다. 어린 것을 병실에 혼자 둘 수 없다며, 할머니가 손주 간호를 자처했다. 그 아이의 병상에도 봄볕이 스며,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문을 나서기 바란다. ‘제주여행 모녀’ 역시 쾌유를 빈다. 감내해야 할 사회적 비난이 있다면 건강한 몸으로 기꺼이 받아내기 바란다.
이 불행이 다 지나가면, 이탈리아 시민들은 집 발코니가 아닌 광장으로 모두 나와 밤새 춤추고 노래하라. 그래서 삶의 어떤 위협도 우리에게서 웃음과 노래를 뺏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간의 이름으로 알리길 바란다. 부디 모두 살아 있으라. 살아서 이 엄혹한 시절이 있었음을, 그때 우리는 다정함으로 연대하고, 인간의 품위를 끝까지 잃지 않았음을 증언하라.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가수 최백호, 말로 등의 노래에 가사를 쓴 작사가로, 최근 ‘이 한 줄의 가사’를 펴낸 이주엽 JNH뮤직 대표가 14일부터 <삶과 문화> 필진에 합류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관심과 애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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