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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3곳 중 1곳 문 닫아… 시장밥 45년에 이런 불황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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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3곳 중 1곳 문 닫아… 시장밥 45년에 이런 불황은 처음”

입력
2020.04.14 04:30
수정
2020.04.14 11: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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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 맞은 남대문시장ㆍ명동ㆍ서교동 상권 르포

보증금 까먹고 카드 빚 돌려 막고… 자영업자 10명 중 7명 “폐업 고민”

10일 서울시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노점 골목. 문을 닫은 점포들이 많아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정준희 인턴기자
10일 서울시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노점 골목. 문을 닫은 점포들이 많아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정준희 인턴기자

“한 번 둘러보세요. 다들 줄줄이 문만 닫고 있습니다.”

45년 동안, 여행 가방을 팔면서 시장 밥만 먹고 살아온 그에게 요즘 상황은 낯설기만 했다. 매일같이 가게 문을 닫고 나가는 동료 상인들의 씁쓸한 모습은 이젠 일상이 됐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전숭창(63)씨가 전한 최근 시장내 분위기다. 지난달에도 30년 넘게 그의 옆 가게에서 장사해 온 동료가 다른 곳으로 떠나는 길을 지켜봐야만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객들의 씨가 마른 판국에 누가 여행용 가방을 사겠냐고 토로한 전씨는 “시장 주변 가게의 3분의 1은 폐업을 했다고 보면 된다”고 푸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사실상 줄폐업에 돌입했다. 종업원 축소나 운영시간 단축 등으로 버텨왔지만 한계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영업 중단에 들어간 양상이다.

이날 정오께 찾아간 남대문시장에도 을씨년스런 기운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골목 안쪽 점포는 3곳 중 1곳 꼴로 영업을 중단한 탓에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다. 상대적으로 위치가 좋은 대로변 상가 점포에도 5곳 중 1곳 꼴로 ‘임대문의’ 안내문이 주인 대신 가게를 지켰다.

잇따른 폐업 소식은 남겨진 자영업자들에게 불안감만 더해주는 듯 했다. 남대문시장 지하 1층 상가에서 영양제 등을 판매해 온 이모(52)씨는 “여긴 에스컬레이터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점포가 가장 목 좋은 자리인데 얼마 전 나갔다”며 “그런데도 아직까지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무너진 상권을 소개했다. 이씨는 “나도 월세 40만원을 못 내 보증금을 까먹고 있지만 달리 갈 곳이 없다”며 “재고 물량은 빈 점포에 진열해 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남대문시장에서 가죽 가방을 판매하는 조모(57)씨는 “10~20년씩 장사를 해왔던 시장내 가게 5개가 지난달에 한꺼번에 방을 뺐다”며 “30년 간 가방만 팔아온 우리 부부는 어디 갈 데도 없어 카드를 돌려 막으며 버티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대문시장 자유수입지하상가가 손님 없이 썰렁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져 휴,폐업에 들어간 점포가 늘면서 몇몇 상인들만 가게를 지키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남대문시장 자유수입지하상가가 손님 없이 썰렁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져 휴,폐업에 들어간 점포가 늘면서 몇몇 상인들만 가게를 지키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남대문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현재 4,000여개 점포 중 휴업 점포는 약 300개다. 하지만 전영범 남대문시장 상인회장은 “귀금속 상가처럼 영세한 점포 수십 개가 모여 있는 단체 상가를 제외한 수치라 실제 휴업 점포는 훨씬 더 많다”며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니 폐업하려는 상인들이 이달에 꽤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자영업자들이 모여 있는 중구 명동 거리 또한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곳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이모(54)씨는 “명동 장사는 관광객과 술집인데 둘 다 막히니 높은 월세를 이기지 못하고 점주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장세정 명동부동산 이사는 “점포를 내놓겠다는 문의가 두 배 이상 뛰었는데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방치하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10일 마포구 서교동에서 고깃집을 운영중인 김지영씨가 장사준비를 하고 있다. 이 가게는 평소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찾는 가게였지만 코로나19 이후 하루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10일 마포구 서교동에서 고깃집을 운영중인 김지영씨가 장사준비를 하고 있다. 이 가게는 평소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찾는 가게였지만 코로나19 이후 하루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평소 ‘3040’ 세대가 많이 찾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카페거리 역시 양쪽으로 벚꽃이 만개했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이 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지영(48)씨는 “평소 저녁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었던 가게였는데 얼마 전에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던 날도 있었다”며 “하루는 저녁에 주변이 어두컴컴해 나가 보니, 우리 가게만 불을 켜놓고 있더라”라고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이어 “출근길에 주위를 둘러보면 임대 딱지가 붙은 가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얼마 전 폐업한 중국음식점 사장이 우리 가게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가셨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서교동 카페거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상철 대박부동산 소장은 “건물 하나에 공실 하나씩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폐업을 고려 중인 자영업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소상공인연합회가 진행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6개월 이상)될 경우 사업장 전망에 대해 ‘사업은 유지하겠지만 폐업을 고려할 것 같다’와 ‘폐업할 것 같다’는 응답이 각각 48.6%, 23.9%로 70%를 훌쩍 넘었다.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이 폐업을 생각하고 있단 얘기다.

지난 해 3월과 올해 3월 매출을 비교하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 깎였다’는 응답이 68.4%에 달했는데 이 중 ‘매출이 100% 감소했다’는 답도 15.8%나 됐다. 3월 매출이 ‘제로(0)’였다는 뜻이다. 아울러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월 매출이 절반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소상공인은 92.2%에 달했다.

서교동 카페거리에서 문을 닫은 가게 앞에 붙은 임대 문의 현수막. 서재훈 기자
서교동 카페거리에서 문을 닫은 가게 앞에 붙은 임대 문의 현수막. 서재훈 기자

이처럼 영세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지만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은 멀기만 하다. 남대문시장의 조모씨는 “지난주 긴급대출을 신청하러 오전 6시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센터에 갔는데 오전 4시부터 기다린 사람들에 밀려 신청조차 못 했다”고 털어놨다. 서교동에서 고깃집을 운영 중인 김씨도 “월 고정비만 1,500만원이라 버티기 힘들어 3월 6일 대출 신청을 했는데 한 달째 감감 무소식이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남수 소공연 연구위원은 “신속함이 핵심인 긴급자금 집행에서 시기를 놓치면 소상공인들의 생존은 어렵다”며 “정부는 현 상황을 긴급 재난으로 보고 소상공인 재난수당과 같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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