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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조선의 시호(諡號)에 대한 단상

입력
2020.04.13 18:00
수정
2020.04.13 18:2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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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중ㆍ고교가 중3ㆍ고3부터 온라인으로 개학한 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고색고등학교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생과 온라인으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중ㆍ고교가 중3ㆍ고3부터 온라인으로 개학한 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고색고등학교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생과 온라인으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592년 음력 4월 14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이다. 음력이지만 오늘 날짜와 겹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여기서는 선조의 시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각자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왕조시대의 경우, 임금에 대한 평가는 시호에 가장 압축적으로 들어 있다.

명나라가 천자(天子)의 나라일 때는 유명증시(有明贈諡), 사호(賜號), 묘호(廟號), 시호(諡號), 대왕(大王)의 순으로 썼다. 예컨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경우는 ‘유명증시강헌태조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有明贈諡康獻太祖至仁啟運聖文神武大王)’이다. ‘유명증시 강헌’은 명나라가 보내 준 시호가 ‘강헌’이란 말이다. 시호에 쓰는 글자에는 나름의 뜻이 있다. 예컨대 ‘강’은 백성을 어루만져 편하고 즐겁게 했다(撫民安樂), ‘헌’은 선을 실천하여 기록할 만하다(行善可記)라는 뜻이다. 특기할 사실은 청나라가 보내 준 시호는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의 경우, 해당 실록 표지는 ‘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고 되어 있다. ‘세종’은 우리가 붙인 묘호이고 ‘장헌’은 명나라가 준 사호이다. 정식 시호는 ‘유명증시장헌세종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有明贈諡莊憲世宗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세종은 이런 칭호를 들어 마땅한 분이니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밖에 임금의 업적과 공덕을 찬양하기 위한 ‘존호(尊號)’라는 것도 있다. 임금이 훌륭하면 얼마든지 칭송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가당찮은 ‘존호’가 곧잘 붙었다는 사실이다.

선조의 시호는 유명증시소경선조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계통광헌응도융조이모수유 광휴연경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有明贈諡昭敬宣祖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啓統光憲凝道隆祚貽謨垂裕廣休延慶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다. 여기서 ‘계통광헌응도융조’와 ‘이모수유광휴연경’이 존호이다. 실록에 의하면 선조는 존호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붙였는데 너무 길어서 해석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조가 무슨 공이 있어서 태조나 세종보다 더 어마어마한 칭송을 받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사람으로는 인조도 선조에 뒤지지 않는다. 선조는 200년간의 태평성대에 취해서 당했다고 핑계라도 댈 수 있겠지만, 인조는 임진왜란 이후 계속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었는데도 혼자 우물 안 개구리로 세상을 보다가 참극을 자초하였다. 그런데 즉위 초인, 인조 3년(1625년)의 기록을 보면 비극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당시 민간에 ‘상시가(傷時歌)’라는 노래가 유행했는데 시사를 풍자하고 훈신을 질타한 내용이었다. 그 가사는 이러하다. “훈신들아 뽐내지 말라. 그의 집에 살면서 그의 땅을 차지하고 그의 말을 타며 그와 같은 짓을 한다면 너희들이 그 사람과 다를 게 무엇인가!” 여기서 ‘훈신’은 인조반정의 공신들을 말하고, ‘그’는 광해군 시절의 간신배들을 뜻한다. 결국 백성들 보기에 광해군 시절이나 인조 시절이나 마찬 가지, 도긴개긴이었다.

인조가 받은 시호도 걸작이다. 1649년 효종은 즉위년에 ‘인조(仁祖)’라는 묘호(廟號)를 올리고, 시호는 여러 차례 개정 끝에 ‘헌문열무명숙(憲文烈武明肅)’이라 정했다. 시법(諡法)으로 뜻을 풀이하면 “선한 사람을 상주고 악한 사람을 벌하는 것이 헌(憲), 자애로운 은혜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문(文), 덕(德)을 지키고 왕업(王業)을 높인 것이 열(烈), 임금의 자리를 편안히 잘 지키며 공을 이룬 것을 무(武), 사방을 밝게 비춘 것이 명(明), 몸을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숙(肅)”이다. 알맹이 없는 현란한 수사에 동의하기 힘들다. 누군가는 인조가 아니라 악조(惡祖)라고 평가한 바 있다.

기왕에 음력으로 글을 열었으니 한마디 더하고 싶다. 칼럼이 3주마다 나가는 관계로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3월 31일(음력 3월 8일)은 세종대왕이 1420년에 집현전을 여신 날이다. 2020년, 정확히 600년이 되는 뜻깊은 날에 대왕을 기리는 성대한 행사는커녕, 학교를 열어야 할지 말지 혼란을 겪었다. 우울한 현실에 소중한 날을 망각했다. 게다가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했건만, 알고 보니 공교육 전반이 온라인 교육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초ㆍ중ㆍ고교의 원격 교육은 물론이고 평가 순위를 자랑하며 부산을 떨었던 대학들까지 쩔쩔매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온라인으로 선생님들과 영상 대화를 하다가 끊어진 장면을 보니 허탈한 지경이다. 이 김에 과시형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온라인 강의 및 새로운 교육 환경에 대비한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문제의 근원은 교육부에 있다. 학원의 자율성을 옥죄듯 움켜쥐고서 말 잘 듣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차별하고 간섭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학문을 존중하여 꽃 같은 문화(英文)를 피워 낸 세종과 비교할 때, 지금 우리 교육부의 모습은 어떠한가. 감염병 아래 드러난 교육 현장의 실상을 보며 새로운 상시가를 읊을 판이다. 이래저래 상심할 일이 많은 시절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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