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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폐 끼치기 싫다”는 일본의 거리두기 실천

입력
2020.04.22 04:30
수정
2020.04.22 06:5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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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일본, 다른 일본] <10> 사회적 거리두기의 문화적 상대주의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 전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지만 나라마다 호응도와 인식이 차이가 난다. 일본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적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의한 측면이 크다. 일러스트 김일영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 전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지만 나라마다 호응도와 인식이 차이가 난다. 일본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적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의한 측면이 크다. 일러스트 김일영

◇문화에 따라 ‘붐빈다’는 기준은 다르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두의 바램과는 달리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하는 모양새이다. 타인과의 거리를 멀리하고, 붐비는 곳을 피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한동안 금과옥조가 될 듯 하다.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병 예방 때문에 고안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타인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적절한가에 관한 문화적 개념으로 오래 전부터 인지되었고, 재미있는 비교 연구도 많다. 예를 들어 북유럽에서는 한 공간에 있는 타인과 몇 미터씩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제법 큰 홀에 대여섯 명만 함께 있어도 붐빈다는 말이 나온다. 대조적으로 아랍에서는 공공 장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도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고 아랍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적 공간은 그 어떤 문화권보다도 널찍하고 여유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말하자면, 문화권에 따라 ‘붐빈다’는 기준은 다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야 붐비는 상태인지, 어떤 상황에서 붐비는 것이 참을만한지 혹은 거슬리는지 판단 기준이 제각각이다. 방역 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행동 지침으로 ‘옆 사람과 2미터 이상 거리를 둘 것’이라는 객관적인 수치를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일 터, ‘붐비는 곳을 피하라’는 애매한 표현은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 차이, “나 = 신체” VS “나 = 정신”

예전에 서양의 연구자들은, 일본인은 붐비는 곳을 좋아한다고 주장했었다. 일본 문화는 타인과 부대끼는 것이나 밀집된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 일본의 문화적 습관은 그렇게 보일 만한 여지가 있었다. 전통식 가옥에서는 다다미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가족들끼리 사이좋게 방을 공유했다. 미국의 한 연구자는 “일본에는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고 단언하기도 했다.

프라이버시라고 하면 지금은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 정보 환경과 개인 정보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듯하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개념이 그렇듯, 프라이버시라는 개념도 문화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나’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에 따라 프라이버시의 정의가 다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양상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서양 문화권에서는 ‘나 = 나의 신체’라는 생각이 강하다. 허락없이 누군가가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자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공공 장소에서도 굳이 나만의 공간(프라이버시)을 확보하려는 성향이 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영어로 ‘붐빈다(crowded)’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이는 “내 몸이 나를 대변한다”는 생각과도 관계가 있다. 북적이는 공간에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히게 된다. 이것이 나에 대한 예기치 않은 공격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악수나 볼 입맞춤 등 서양식 인사법은, 가벼운 신체적 접촉을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동양 문화권에서는 ‘나 = 나의 정신’ 이라는 생각이 우세하다. 몸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나의 진짜 중요한 정수는 몸 어딘가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모욕적인 언사로 정신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는 자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부모나 조상의 삶이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선조에 대한 비하나 모욕적 발언은 견디기 힘든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서양의 연구자들이 왜 일본에는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다고 오해했는지 알 듯도 하다. 과거의 일본인들이 타인과의 물리적인 접촉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특별히 붐비는 것을 좋아하거나 인내심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타인의 몸이 닿는 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저항할 이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이해하는 방식이 서양과 달랐던 것이다.

◇일본 사회의 거리두기 실천과 도덕적 나르시시즘

지금은 “일본에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한국의 여행객은 물론이요, 일본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에서는 타인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강하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의식도 높다”고 입을 모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대도시에서는 일상 생활 속에서 타인과의 거리두기가 비교적 엄격하게 실천되고 있다. 공공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몸이 닿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선뜻 다가오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강하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너무 유난해서 피곤할 지경이다.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고, 휴대전화도 진동이나 무음 설정이 기본이다. 덕분에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 교통 수단은 도서관처럼 조용한데, 승객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휴대전화 화면에는 엿보기 방지 기능을 갖춘 보호 필름이 붙어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는 “나 = 나의 신체” 라는 서양적 관념이 온전히 받아들여진 것일까? 그렇게만은 볼 수도 없는 의외의 장면이 적지 않다. 꽃놀이나 전통적인 축제 (마츠리) 등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행사에서는 거부감 없이 타인과 몸을 부대낀다. 평소에는 예의를 갖추던 회사 동료가 운동회나 회식 등의 친밀한 자리에서는 어깨나 팔이 닿아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붐비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서양 문화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사실 일본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적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의한 측면이 크다. 때문에 크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이 될 때에는 거부감없이 타인과 몸을 맞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회적 규범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를 연출하고자 하는 도덕적 나르시시즘이 강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 = 나의 정신” 이라는 전제는 여전히 굳건하다.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해도, 사실 그 근거가 되는 문화적 전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함께 일을 도모하는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점도 스트레스이지만, 사실 서로를 바이러스의 잠재적 전달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감염병 시대에 요구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나’의 독립성을 위한 프라이버시 실천도 아니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아니다. 단지 인간이 바이러스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몸부림일 뿐이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도 언젠가는 종결될 테지만, 그렇다고 한들 많은 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지겠는가. 이 ‘비인간적’인 행동 지침이 당분간 계속되리라 생각하면 아득하다.

김경화ㆍ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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