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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카렌 블릭센이 이삭 디네센이 된 이유(4.17)

입력
2020.04.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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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0년대 케냐 커피농장의 카렌 블릭센. 오른쪽은 남동생 토머스. 위키피디아
11920년대 케냐 커피농장의 카렌 블릭센. 오른쪽은 남동생 토머스. 위키피디아

‘아웃 오브 아프리카’ ‘바베트의 만찬’의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Karen Christenze von Blixen Finecke, 1885.4.17~ 1962.9.7)의 첫 소설은 1934년 미국에서 출간한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다. 그는 이삭 디네센(Isak Dinesen)이란 필명으로 그 책을 냈다. 위키피디아는 미국의 저명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에서 출간한 것으로 설명돼 있지만, 2013년 마거릿 애트우드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에세이에 따르면 그 책은 ‘해리슨 스미스 & 로버트 하스’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됐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3년 뒤 출간한 자전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이후의 평전 등을 통해 알려졌듯, 소설을 쓰던 40대의 블릭센은 남편과 이혼하고, 연인과 사별한 데다, 케냐 커피 농장마저 대공황과 화재가 겹쳐 빚에 넘어간 뒤였다. 31년 귀국한 그는 거의 파산 상태였다. 그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첫 책을 쓴 것도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명 출판사들은 출간을 거절했다. 46세의 무명 여성 작가란 게 주된 이유였다. 단편소설집이 썩 안 팔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내용도 제목처럼 ‘고딕’적이었다. 한마디로 상품성이 없다는 거였다. 출간을 결정한 ‘해리슨 스미스…’도 조건을 달았다. 이름난 소설가(Dorothy Canfield Fisher)의 소개 글을 함께 실어야 한다는 것, 선인세는 없다는 것 등이었다. 그렇게 출간된 ‘…고딕 이야기’는 미국 출판시장을 좌우하다시피 하던 전통의 북클럽(Book of the Month Club)의 ‘이달의 책’ 등에 선정되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후 랜덤하우스 등 대형 출판사들은 그의 새 작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필명 ‘디네센’은 그의 결혼 전 이름이었다. 알다시피 이삭(Isak)은 창세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낳은 아들 이름이다. 그는 유명작가가 된 뒤에도 한사코 필명을 고집했다. 그의 필명들은 피에르 앙드레젤 등 남성 이름이거나 중성적이었다. 애트우드는 블릭센이 소위 ‘여류작가의 새장(Lady Scribbler Cage)’ 속에 갇히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그는 남편이 옮긴 매독까지 이겨내고 아프리카의 광막한 자연을 품었던 강한 작가였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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