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결정(氷晶)이 비처럼 쏟아지는 기상 현상을 우박(雨雹)이라 한다. 드물게 쓰이는 한자인 ‘박(雹)’은, 자전에 따르면 그 자체로 우박을 뜻하는데, 용례로는 촉을 뭉툭하게 만든 연습용 화살을 박두전(雹頭箭)이라 하고, 풍비박산(風飛雹散)에도 쓰인다. 결정 직경이 5㎜보다 작으면 통상 ‘싸락눈’이라 불리고, 그 이상이면 우박이다. 작은 우박은 박두전처럼 충격이 덜하지만, 어떤 우박은 일대를 풍비박산 낸다. 강한 상승기류와 천둥 번개를 동반하는 적란운(積亂雲)에서 주로 만들어지며, 계절적으로는 늦은 봄부터 초여름이 극성기다.
적란운은 주로 산봉우리처럼 세로로 치솟는 형태를 띠는데, 큰 구름은 성층권까지 닿기도 한다. 차가운 상층부는 빙정이고, 아래쪽은 수증기다. 빙정이 무거워지면 중력 때문에 떨어지면서 수증기와 만나고, 그게 상승기류를 타고 다시 솟구치면서 수증기와 결합해 몸집을 키운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박은 점점 커진다.
1986년 4월 14일, 방글라데시 데칸(Deccan)고원 권역인 고팔간지(Gopalganj)에 하나 무게가 1kg(2.25파운드)이 넘는 우박이 쏟아졌다. 인류 기상 관측 사상 최대 크기였다. 직경은 측정된 바 없지만, 주민들이 ‘호박만 했다’고 전한 그 우박에 맞아 92명이 숨졌다. 1888년 4월 30일 인도 모라다바드(Moradabad) 등지에 쏟아진 우박은 무려 246명의 사상자를 냈다. 공인 최대 우박 인명 피해였다.
고대인에게 우박은, 벼락처럼 신의 형벌이었다. 1942년 영국의 한 산림 감시원이 해발 고도 4,870m 인도 루프쿤트 산역의 한 계곡 호숫가에서 200여구의 두개골과 인골 파편을 발견했다. 2004년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AD 850년쯤 희생된 이들의 유골이었다. 유골에는 크리켓 공 만한 크기의 물체에 맞아 함몰된 흔적이 일제히 발견됐다. 우박 희생자였다. 그 지역에 전해오는 오래된 노래에는 ‘신성한 땅을 침범한 외지인들에게 분노한 여신이 쇳덩이 같은 얼음덩이로 죽음의 비를 내렸다’는 가사가 있다.
우박은 추락 속도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모양과 크기, 바람의 영향을 받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직경 10㎝가량이면 시속 160km 이상으로 메이저리그 투수 평균 구속(球速)을 웃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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