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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타이타닉호와 살아남은 자의 비극(4.15)

입력
2020.04.1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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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의 행운의 생존자 호소노 마사부미는, 하지만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오명 속에 여생을 보내야 했다. 위키피디아
타이타닉호의 행운의 생존자 호소노 마사부미는, 하지만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오명 속에 여생을 보내야 했다. 위키피디아

영국 화이트스타 라인 북대서양 횡단 여객선 RMS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4일 밤 11시40분 초대형 빙산에 충돌해 15일 새벽 2시20분 완전히 가라앉았다. 0시45분부터 시작된 구명정 탈출은 침몰 5분 전까지 이어졌다. 1,514명이 숨졌고, 706명이 구조됐다. 일본인 승객 호소노 마사부미(細野 正文, 1870~1939)는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 행운 때문에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고통받았다.

일본 니가타 현 출신인 그는 히토츠바시대학 전신인 도쿄고등상업학교를 졸업, 일본제국철도 등 몇몇 기업을 거쳐 1907년 교통부 철도공무원이 됐다. 도쿄대 외국어학과에서 러시아어를 익힌 그는 1910년 러시아 철도시스템 연구원으로 파견됐고, 2년 뒤인 12년 귀국했다. 그에게 타이타닉호는 영국-뉴욕을 거쳐야 하던 고국행 귀국선이었고, 도쿄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타이타닉 생존자인 그는 ‘행운의 남자’로 불리며 요미우리 등 여러 신문, 잡지와 인터뷰했다. 하지만 얼마 뒤 사태가 표변했다. 10번 구명정의 한 생존자(Archibald Gracie)가 사고 기록을 책으로 내면서 “한 일본인 승객이 여성과 아이들을 밀쳐내고 구명정에 ‘무단승선(stowaway)’했다”는 주장을 제기한 거였다. 마사부미는 유일한 일본인 승객이었다. 미 상원 청문회에서 구명정 승무원들도 아동ㆍ여성 우선 탑승 원칙을 재확인하며 일부 남성이 여성인 척 위장한 예가 있다고도 발언했다. 마사부미는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한다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을 저버린 수치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이듬해 교통부에서 해고됐다가 부득이한 필요 때문에 복직됐지만, 그와 가족은 실로 긴 세월 동안 손가락질과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진실을 항변하지 않았다.

진실은 1997년 영화 ‘타이타닉호’ 개봉을 전후해 이뤄진 사고 재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를 ‘무단승차자’라고 고발했던 필자와 그가 다른 구명보트를 탄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사고-침몰의 그 짧은 순간에, 칠흑 같은 어둠의 아비규환 속에서 그가 명예로운 죽음을 다짐하며 아내에게 쓴 유서도 공개됐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의 진실과는 다른 진실, 즉 살아남았다는 진실 앞에서 스스로 괴로워했다. 허위 주장을 근거로 그를 비난한 이들 가운데 그의 무덤 앞에서나마 공개 사죄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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