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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살릴 것인가” 도덕적 상처에 신음하는 세계 코로나 의료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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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살릴 것인가” 도덕적 상처에 신음하는 세계 코로나 의료진들

입력
2020.04.13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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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ㆍ장비 부족한 상황서 환자 생사 가르는 심판자 역할

“살릴 수 있는 사람 못 살렸다” 죄책감에 정신적 고통

11일 스페인 레가네스의 한 병원 앞에 보호장구를 착용한 의료진들이 코로나19로 숨진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 박수를 치고 있다. 레가네스=로이터 연합뉴스
11일 스페인 레가네스의 한 병원 앞에 보호장구를 착용한 의료진들이 코로나19로 숨진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 박수를 치고 있다. 레가네스=로이터 연합뉴스

‘응급실에 남은 병상은 하나, 어떤 환자부터 받을까. 또 하나 남은 인공호흡기로는 나는 누구부터 살려야 하는 것인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단 한 생명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료진의 신념을 공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 최전선에 선 의료진이 부족한 의료자원 탓에 생과 사를 결정하는 심판자 역할을 떠안게 되면서다. 영국 BBC방송은 이들을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를 입은 부상병”이라고 규정했다. 도덕적 가치를 위반한 행동으로 죄책감과 분노를 느끼는 의료진이 급증하면서 신체적 피해(감염)만큼이나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BBC는 앞서 9일(현지시간) 일부 참전군인이 겪는다고 알려진 도덕적 상처 피해 위기에 처한 세계 의료진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이 증상은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향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포나 두려움을 주로 느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는 다르다. 죽음의 공포감에 고통 받는 게 PTSD라면 도덕적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희생된 동료(혹은 환자)에 대한 죄책감에 ‘나는 괴물이야’ 같은 생각에 집착한다. 한 의사는 방송에 “진짜 스트레스는 평소 우리가 버리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절규했다.

열악한 의료환경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의료 인력의 상실감을 키운 첫째 요인이다. 평소라면 충분한 병상과 인공호흡기 등으로 소생시킬 있는 환자들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응급의학 분야 리사 모레노월튼 박사는 최근 미국 폭스뉴스를 통해 “‘하나뿐인 인공호흡기로 누구를 살릴 것인가’와 같은 정답 없는 질문에도 의사가 판단을 내려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실태를 전했다. 결국 의료진은 ‘환자를 사지로 내몰았다’ ‘생명을 구하는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등의 생각으로 죄책감 내지 수치심에 직면하게 된다. 둘 다 도덕적 상처와 연관된 대표적인 감정이다.

정부의 불명확한 지침도 의료진을 궁지로 몰았다. 미 NBC뉴스는 최근 “병원 담당자들은 의료진 보호장비 공급에 실패하고, 코로나19 검사 지침 역시 불분명하게 제공한 연방ㆍ주(州)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의료체계가 무너진 탓에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의료진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도덕적 상처 관련 전문가인 리타 브록은 “의료진은 자신을 ‘실패자’로 만든 당국에 배신감, 분노, 굴욕 등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상처를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도덕적 상처가 장기적으로 훨씬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의료진 2만2,000여명(세계보건기구 11일 기준)이 코로나19에 감염된, ‘물리적 고통’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부작용이 미래에 닥칠지 모른다는 얘기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 연구진은 2일 직업의학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도덕적 상처는 우울증, 나아가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막대한 정신적 피해”라고 단언했다. 당장의 응급상황에 가려진 정신적 상처가 일상을 회복한 후 드러나기 시작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위험성에도 도덕적 상처는 개념조차 생소하고 제대로 된 치료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지속적인 교육과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 대중의 격려 역시 큰 힘이 된다. KCL 연구에 참여한 나일 그린버그 교수는 “팬데믹 이후 몇 달, 아니 몇 년간 의료진을 포함해 코로나19 대응을 담당한 핵심 인력의 정신건강을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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