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금융사기업체 피해자 도우미 이민석 변호사 인터뷰
이철은 거물 사기꾼, VIK 사건은 피해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1조 사기 쳐도 고작 징역 10년… 정치인과 법조계 책임 커
“사기꾼 주장 그대로 보도 안돼… VIK 홍보한 방송도 문제”
“1조원 범죄에 피해자가 3만명이 넘어요. 그런데도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없더군요. 그래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부터 1조원대 다단계 금융사기 범죄인 IDS홀딩스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의 비리를 파헤쳐온 ‘행동하는 법조인’이 있다. 검사 출신의 이민석 변호사의 활동 초점은 단순히 범죄사실을 파악하기보다는 피해자 입장을 대변하는 데 맞춰져 있다. 피해자가 수만 명에 달하고 일부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데도 수사기관이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정식 변호인은 아니지만 경찰과 검찰, 법원 주변에서 이들과 함께 4년을 보냈다. 피해자들이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동석했고, IDS와 VIK에 연루된 사기꾼들의 재판이 열리면 법정에 나왔다. 피해자 입장을 담은 고소장이나 진정서, 탄원서, 기자회견문 작성도 이 변호사의 몫이었다. IDS와 VIK 그리고 수사기관을 규탄하기 위한 집회에는 수도 없이 참석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닌데도 그는 4년을 자기 일처럼 움직였다. 피해자들을 취재하다 보면 “자세한 건 이민석 변호사한테 문의하는 게 낫다”는 답변이 돌아올 정도로, 이 변호사는 이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이 변호사는 지난 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철 VIK 대표를 둘러싼 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으로 최근 VIK 사건이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피해자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1조원 사기꾼’인 이철 대표를 변호했던 정치인들이 여전히 피해자에게 사과 한 마디 없고, 사기꾼 변명이 여과 없이 언론에 공개돼 억울한 사람처럼 비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특히 사회정의 차원에서 VIK 사기사건에 연루된 정치인과 법조인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비호와 은폐가 없었다면 피해자들이 다단계 금융사기범의 꾐에 넘어가 전 재산을 날리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1조원 사기를 치고도 징역 10년밖에 안 나오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기꾼들이 갈수록 대범해지고 활개를 치는 이유도 10년 감방 살아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돈보다는 사회악 때려잡는 데 관심
-다단계 금융사기사건의 피해자 변호는 언제부터 맡게 된 건가.
“정확히 말하면 피해자들의 변호인은 아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돕고 있는 거다. 그리고 처음부터 금융사기를 파헤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2014년 3월에 공공모(공무원 교육과 공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모임)라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사이비 종교를 추적한 적이 있었는데, 포교사가 1조원 금융사기업체인 IDS홀딩스 모집책을 하고 있었다. 그걸 계기로 2016년 2월부터 IDS홀딩스를 추적하다 보니, 금융사기 범죄의 심각성을 알게 됐고, IDS와 VIK 피해자들을 돕게 됐다.”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을 접하고 피해자들을 만나 보니 어떤 느낌을 받았나.
“검찰과 경찰이 금융사기 주범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있었다. 범죄금액 축소는 기본이고, 수사정보도 빠져나간다. 사기꾼들은 재판 중에 풀려나서 또 사기를 치고 다닌다. 검찰은 봐주기 기소하고 법원은 영장 기각하고,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기꾼들의 배후에는 꼭 정치권 인사가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피해자 도우미 활동에 집중하다 보면 비용도 필요할 텐데, 수임료는 받고 활동하는 건가.
“수임료 받은 적 없다. 내 돈 내고 활동하는 거다. 내가 변호사지만 사회악을 때려잡는 것이 목적이지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 공공모 회원과 시민단체인 약탈경제반대행동 식구들과 함께 시민운동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다.”
-피해자들을 돕다 보면,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나.
“나도 변호사니까 다른 사건 맡는다. 아직까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
-그래도 돈 안 되는 활동에, 돈 되는 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 않나.
“그럴 수밖에 없다. 사기꾼들의 배후에는 비위 세력들이 있다. 부패한 법원과 검찰, 심지어 뇌물 받는 정치인도 있다.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은 대부분 정관계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이기 때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융사기범죄 전문 법조인이 당신 말고도 많을 것 같은데.
“많이 있다. 그렇지만 쉽게 못 나설 거다.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된 사건인데 잘못 나섰다가는 부메랑 된다. 말도 안 되게 기소한 검사들과 말도 안 되게 판결한 판사들, 그런 사람들이랑 등져야 하는데, 변호사 입장에선 영업에 도움이 안 된다.”
-사법연수원 수료하고 검사로도 일했나.
“2002년에 임관해서 1년 정도 검사하다가 나왔다. 효순이 미선이가 장갑차에 깔려 죽었는데 무죄 판결 나고, 검사가 조직폭력배를 때려 죽이는 모습까지 보니까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결정 같다.”
◇“1조 사기 치고도 10년 살면 해볼 만해”
-VIK 사기사건이 최근 언론 보도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죄질이 안 좋은 사건인가.
“아주 안 좋다. 기록만 봐도 법원과 검찰이 봐주기 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이철 대표가 7,000억원 사기범인데 1심 선고까지 무려 3년이 넘게 걸렸고 형량은 고작 징역 8년(1심 기준) 나왔다. 검찰은 7,000억 사기꾼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가 아니라 ‘단순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법원은 보석으로 풀어줬다. 이런 재판 본 적 있나. 7,000억 사기 쳐서 겨우 8년 징역 살면 누구나 사기치고 싶을 거다.”
-VIK 수사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사건의 핵심에 제대로 못 들어가고 덮었다는 거다. 유망중소기업 투자를 명목으로 VIK가 돈을 넣었던 기업이 꽤 있다. 피투자 기업에 들어간 돈은 모두 피해자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그렇다면 투자 받은 기업에 돈이 정말로 들어갔는지, 해당 기업은 제대로 투자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진했다고 본다.”
-VIK를 다른 사기사건과 비교할 때 어떤 점에서 심각한 건가.
“일단 피해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피해자가 3만명이 넘는다. 피해금액도 1조원에 육박하고. 일반 사기사건은 아는 사람끼리 주로 이뤄지는데,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할 수 있다. 내가 투자한 다음에 다른 사람을 끌어와야 돈을 버는 구조다. 그런데도 이런 대형 사기사건 주범들의 형량이 비현실적으로 낮다. VIK는 1조원 사기사건인데 주범인 이철 대표가 받은 형량이 14년 6개월밖에 안 된다. 1억원 사기 쳐도 징역 1년 나오는데, 이럴 바에야 1조원 사기 치고 10년 정도 살고 나오자고 생각할 거다. 미국 같은 경우는 이런 범죄 저지르면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
-VIK 사건을 뜯어보면 정치권 인사, 특히 진보인사들이 많이 연루된 것처럼 보인다. 실망하지 않았나. .
“전혀 실망 안 했다. 정치인들에게 특별한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 앞에서 무력하다. 일단 현실정치 뛰어들면 돈이 필요하다. 돈만 준다면 다단계든 아니든 가리지 않는다. 이철 대표 초청으로 VIK에서 강의한 유명인사들이 VIK가 어떤 회사인지 과연 몰랐겠나.”
-당신이 조사한 자료를 보니까 노무현ㆍ문재인 정부 핵심인사들이 VIK를 방문해 주도적으로 강의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사기꾼 회사를 홍보해준 셈인데.
“한두 명도 아니고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렇게 끌어 모으기도 힘들 거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사기업체 홍보에 활용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 뒤늦게라도 ‘그런 사기꾼과 알고 지낸 걸 후회한다’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래서 괘씸하다는 거다. 피해자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이다. (2012~2014년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VIK 사무실에서 다단계 모집책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VIK 사건을 파헤치면서 주로 여권 인사들의 부도덕성과 ‘내로남불’ 행태를 많이 지적하는데, 정치적 성향이 혹시 보수 쪽인가.
“전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빨간물 든 극좌에 가깝다. 대학교 때 학생운동도 엄청나게 했고, 지금도 진보좌파 인사들하고 주로 교류한다. 진정한 좌파는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비판한다.”
-VIK 사건에 언급된 유명인사들 중에서 가장 실망한 사람은 누구인가.
“유시민 이사장이다. 가장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유 이사장은 VIK 사무실에서 두 차례 강의했고, VIK가 대주주였던 신라젠에도 축사를 하러 갔다. 내가 찾아낸 것만 그 정도다. 그는 2014년 8월엔 VIK 모집책 앞에서 강의했고, 2015년 6월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개강좌를 VIK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1조원 사기친 업체 사무실을 빌려서 시민들 상대로 강의한 거다. 당시 강의 안내 포스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퍼졌다. 유시민 같은 사람이 VIK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누가 VIK를 사기업체로 보겠는가. 이철 대표가 구속되기 불과 넉 달 전 상황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 한다.”
-왜 그런 것 같나.
“사과하는 순간 프레임 싸움에서 진다고 보는 것 같다. 조국 전 법무장관 옹호하면서 검찰개혁을 주장해왔는데, 사과하면 말린다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유 이사장이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 이건 프레임 싸움 이전에 피해자가 3만명이 넘는 대형 사기 사건이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이정희 전 의원도 이철 대표를 변호했다고 하던데.
“이철의 7,000억 사기사건 2심 재판에서 이정희 전 의원과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가 사기꾼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전 의원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쉽게 이해가 안 된다.”
◇부패한 법원과 검찰, 정치인이 문제
-최근 이철 대표 취재를 둘러싼 채널A의 윤리문제와 MBC의 검언 유착 의혹 보도로 VIK 사건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관심은 고맙지만, 피해자들은 두 언론사 모두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취재윤리 문제를 떠나, 채널A는 2015년 6월에 이철 대표와 VIK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방송을 한 적이 있다. 1조원 사기꾼을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는 모범사례로 소개했다. 그랬던 방송사가 돌변해서 이철 비리를 캐겠다고 하니까 피해자들이 분노하지 않겠나. VIK 사건은 피해자가 3만명이 넘는 사건이다. 피해자 관점에서 이야기 해야 하는데, 일부 언론은 진영 논리에 파묻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 (이 변호사는 2015년 8월 배우 문성근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채널A 방송을 링크한 뒤 VIK를 홍보한 게시 글을 보여주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MBC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나.
“MBC는 사기꾼 이철이 감방에서 보낸 황당무계한 편지 내용을 (4월 2일에) 그대로 방송했다. 핵심이 검언 유착이면 그것만 보도하면 된다. 그걸 넘어서 1조원 사기꾼의 변명을 그대로 실어줬다. 이철은 편지에서 ‘VIK는 사기 친 적이 없다. VIK에게 상은 못 줄망정 모욕을 줘서는 안 된다’고 떠들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억울하게 구속된 줄 알 거다.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이 확정된 사람이 전혀 반성 안 하고 있다. 추가 기소돼 지금도 재판 받는 사기꾼이 반성하겠나. 이철 지지자들이 보도내용을 인터넷 카페에 올려놓고 악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MBC한테 열 받아 하는 거다. 봐주기 수사한 검사를 때려잡기 전에 MBC부터 치고 검찰청으로 가자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다단계 금융사기사건을 들여다보면 거의 빠짐없이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사기꾼이 끌어들인 건가,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인가.
“사기사건은 어느 사회든 있다. 막냐 못 막냐의 문제일 뿐이다. 대체로 100억원 이상 사기 치면 소문 난다. 그런데 VIK는 1조원이다.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수사를 제대로 안 하고 내버려뒀지 않나. 이건 사기꾼이 로비를 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기 친 금액의 10%를 로비 자금으로 쓴다는 말이 있다. VIK만 봐도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한 명만 처벌(이철로부터 6억2,900만원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징역 1년 6월 선고) 받았는데, 빙산의 일각이다. 내가 볼 때 이 사건 배후에는 필연적으로 부패한 법원과 검찰, 부패한 공무원과 정치인이 있다고 본다.”
-그렇게 문제가 많은데도 정치권과 법조계 비리가 제대로 안 드러나는 이유는 뭔가.
“축소 수사하고 솜방망이 처벌하는데 제대로 되겠나. 비리 수사하다가 법원이나 검찰 연관된 거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안 하는 거다. 이런 사건은 특검으로 하거나 검경 특별수사본부를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주범이 처벌돼도 왜 사기범죄는 끊이지 않나.
“수사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사할 사람이 없으니까 주범이랑 상위 모집책 처벌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신종 금융사기범죄는 끊임없이 나오지 않나. 전담 수사인력을 대폭 늘려서 말단 모집책도 모두 구속시켜야 한다. 모집책까지 처벌 안 하면 근절이 안 된다.”
-이철 대표에게 은닉재산이 있다고 보나.
“있다고 확신한다. 검찰 수사자료와 판결문만 봐도 427억원의 사용처가 아직 안 밝혀졌다. 그 돈이 어디로 갔겠나.”
-앞으로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계속 응할 건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움직일 거다. 단순한 사기사건 말고 권력형 비리 사건엔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활동 하다 보면 테러 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단단히 마음 먹고 해야 한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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