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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마스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은 없었다

입력
2020.04.11 04:30
수정
2020.04.11 08: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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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마스크 5부제’ 한 달을 넘으면서 마스크 수급이 안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공적 마스크 5부제’ 한 달을 넘으면서 마스크 수급이 안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마스크 대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리저리 동분서주해도 마스크 하나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국민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심지어 당사자조차 인식하지 못했지만, 마스크 대란으로 인해 이른바 ‘의문의 1패’를 당한 이들이 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의 수급조절기능을 곧이곧대로 신봉하는 시장만능주의자가 그들이다.

대란 초기,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국내외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부족사태가 발생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사태가 수습되는 과정에서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신뢰해 마지않는 시장의 수급조절기능이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시장만능주의자의 믿음대로 마스크 시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초과수요로 인해 가격이 오르면서 생산ㆍ유통업자는 더 많이 생산해 팔고자 했을 것이고 소비자들은 비싸진 마스크를 아껴서 더 오래 썼을 것이다. 더구나 마스크 생산에 첨단 기술이나 특수 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시장만능주의자의 ‘주적’인 정부가 마스크 가격을 규제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특별히 공급이 제약될 이유도 없었다. 이에 따라 시간이 가면서 공급이 늘고 수요가 줄어들면, 비록 가격은 좀 비싸졌을지언정 필요한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는 일은 이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보았듯이, 이러한 시장의 수급조절기능 따위는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우선 일부 유통업자의 매점매석으로 인해 생산된 물량이 시장에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보따리상과 무역업자들도-뒤늦게 정부가 수출을 금지하기 전까지-닥치는 대로 마스크를 매집해 들고 나갔다. 일부 생산자들도 유통업자와 공모하여 생산된 물량을 빼돌렸으며, 심지어 마스크 완제품뿐 아니라 MB필터와 같은 원자재에도 매점매석 행태가 나타났다. 불안해진 소비자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가능한 한 많은 마스크를 확보하려 했다. 다급해진 정부가 마스크를 여러 번 사용하도록 독려했지만, 한번 불붙은 가수요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껴 쓰는 것은 고사하고, 쓸 수 있는 마스크 자체를 구할 수 있을 지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의 표현을 차용하면, 마스크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진짜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The invisible hand was invisible because it was not there).”

이처럼 공급부족사태가 지속되자 정부는 급기야 수출을 금지하고, 생산된 마스크를 거의 전량 정부가 구매ㆍ유통하는 동시에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제 기능을 상실한 마스크 시장을 정부가 완전히 대체하는, 사실상 배급제가 시행된 것이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수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비상시까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가? 평상시 원활한 수급조절기능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그러나 경제가 무난히 돌아가는 평상시에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시장의 본질이라면, 이런 시장이란 그 존재가치가 너무도 빈약한 것이다. 또 한 번 스티글리츠의 표현을 차용하면, 평상시에만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은 ‘마치 중병으로 찾아온 환자를 자신은 감기만 고친다면서 돌려보내는 의사’와 다를 바 없다. 정작 가장 필요할 때 쓸모없는 의사처럼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시장만능주의자는 물론이고 일반인의 생각보다 시장은 훨씬 자주 제 기능을 상실하며, 망가진 시장을 신속히 수습하고 때로 과감하게 대체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에 주어진 책무이자 시장의 존재가치를 담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코로나19가 남긴 뼈아픈 교훈이다.

박강우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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