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뉴스를 보면서 희비가 교차한다. 코로나19의 기세가 한풀 수그러드는 것 같다는 소식에 잠깐 기뻐하다 이제 정점을 앞두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에 다시 걱정이 커진다. 누구도 앞으로의 사태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 이럴 때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글이 눈에 닿는다. 지난달 온라인에서 전파된, 빌 게이츠가 썼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14가지 교훈’이 그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전반적으로 감동을 주는 글이었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후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찾아봤다. 뜻밖에도 외국의 언론매체에서 가짜뉴스라는 말이 등장했다. 글을 쓴 사람이 빌 게이츠가 아닌데, 누군가 그렇게 퍼뜨렸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팩트체크를 하듯 여기저기서 관련 소식이 전해졌다. 누가 썼든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가짜뉴스라도 좋았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위안이 됐고, 그동안 소홀히 여긴 사안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짜뉴스라고 알려진 후에도 계속 글이 전파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새삼스럽게 다가온 대목은 삶의 필수품에 대한 언급이었다. 요즘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물질적 풍요나 사치품이 아니라 기본적인 음식, 물, 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바이러스의 변화무쌍한 특성을 볼 때 전염병은 앞으로 얼마든지 새롭게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적으로 기본 생필품을 항상 철저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식량위기에 대한 세계적인 위기감이 형성되고, 국내 식량자급률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이유이다.
한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정부가 나서 챙기는 쌀 외에는 대부분 농작물의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다. 그래서 러시아가 밀을 비롯한 모든 곡물의 수출을 제한하고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쌀의 수출을 중단한다는 소식에 걱정스러워진다. 물론 세계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생각보다 약세를 보인다며 다소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개발해 온 사회경제적 제도와 장치가 한순간에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가 명확히 보여 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빌 게이츠 명의로 퍼진 글을 읽으며 한때 마을에서 도시농부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익하면서 열띤 강의였지만, 솔직히 모든 내용에 공감하지는 않았다. 가령 한국이 반도체로 돈을 많이 벌지만 식량난이 닥치면 뭘 먹고 살 거냐는 말에, 그런 날이 오겠냐 싶었다. 농사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밥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에는 반감마저 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말들이 지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직장을 다니면서 새벽마다 서너 시간 정도 농사를 지으니 가족이 먹을 쌀 걱정은 덜게 됐다는 얘기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세상은 첨단 과학기술의 성과와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비하는데 분주했다. 1차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대신 언제부터인가 농업에 2, 3차 산업을 결합해 높은 부가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로 농촌융복합산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무려 6차 산업이라고도 불린다. 1차 산업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너무 앞서 가는 게 아닐까.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던 식량위기도 결코 안심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에서는 불교환경연대라는 단체가 ‘멈추고 돌아보기’ 캠페인을 벌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회적 격리 기간을 자신과 이웃과 자연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계기로 삼자는 취지였다. 이번 기회에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이며 산업이 어떤 상황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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