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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마운트시나이 병원 고위층은 맨해튼에 없대. 플로리다주(州)로 일찌감치 도망갔거든. 하긴 우리 동네 고급 아파트도 요즘 다 빈 집이더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사는 지인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야기를 나누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 뉴욕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급기야 맨해튼의 상징인 센트럴파크에 야전병원이 들어섰지만, 정작 야전병원 운영 주체이자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인 마운트시나이 병원의 고위 임원 2명은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었다. 2018년 연봉이 600만달러(약 73억원)였던 이들 중 한 사람은 지난달 초부터 코로나19를 피해 방 6개, 욕실 8개짜리 플로리다주 팜비치 저택에서 ‘재택근무’ 중이라는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지난해 맨해튼 연수 생활 중 ‘뉴욕의 부자들은 겨울이면 날씨가 온화한 플로리다에서 3개월 정도 지낸다’는 풍문을 여러 차례 들었던 터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플로리다 체류 기간을 연장한 ‘뉴요커’가 더 많다고 한다.
사사로운 뉴욕 생활의 경험을 또다시 끄집어 낸 것은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시가 미국의 코로나19 핫스폿(집중 발병 지역)이 된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주요인으로 높은 인구밀도와 대중교통 이용률을 꼽는 분석도 있지만 인구밀도가 뉴욕의 2배인 서울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뉴욕의 130분의 1도 안 된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뉴욕이 코로나19의 ‘핫스폿’이 된 가장 큰 배경엔 이 도시의 특징인 극심한 빈부격차가 있지 않나 싶다. 시정부가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외쳐 본들 좁은 공간에 밀집해 사는 저소득층은 실천이 쉽지 않다. 당장 월세를 구하고 부양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바이러스 최전선인 배달원이나 온라인 쇼핑 물류센터 직원으로 내몰린다. 특히 40만명이 거주하는 저소득층용 공공주택은 ‘황폐한 주거환경’의 동의어다. 뉴욕은 1930년대에 공공주택 제도를 처음 도입했지만 80년대부터 치안이 중요해지자 공공주택 예산은 꾸준히 줄였다. 미 시사주간 뉴요커는 최근 홈페이지에 공공주택 주민들이 지난달 중순까지도 코로나19 관련 정보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었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뉴욕시가 시청의 공지사항을 주로 이메일과 애플리케이션으로 알리는 까닭이다.
뉴욕 보건정신위생국이 우편번호에 기반한 지역별 코로나19 확진자를 분류한 자료를 찾아 봤다. 서울의 ‘구’에 해당하는 뉴욕의 5개 보로(맨해튼, 퀸스, 브루클린,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 중 환자가 집중된 곳은 퀸스와 브루클린, 브롱크스였다. 흔히 뉴욕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맨해튼은 상대적으로 사례가 적다. 구체적으로 퀸스의 이스트 엘름허스트(우편번호 11370)는 코로나19 환자가 인구 1,000명당 19.5명인 반면 맨해튼 월스트리트 금융가(우편번호 10006)의 확진자는 인구 1,000명당 2.3명이다. 퀸스 엘름허스트의 2017년 중위소득은 5만2,984달러로, 뉴욕시 중위소득 6만2,040달러보다 15% 적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이 8일(현지시간) 늦게나마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들을 위한 특별 대책을 실시할 뜻을 밝힌 것은 다행스럽다.
빈곤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빈곤층을 방치한 결과는 결국 사회 전체의 비극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뉴욕의 현실은 증명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바이러스로부터 받는 충격은 사람마다 다르다. 뉴욕에 공공주택이 있다면 서울에는 쪽방ㆍ고시원 등이 있다. 우리는 언제쯤 빈곤 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적극적으로 다루게 될까.
김소연 국제부 차장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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