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 직격탄 맞았을 뿐 대량실업 본격 시작
코로나사태, ‘병사(病死)와 아사(餓死)’ 갈림길
재앙수습 앞장서야 할 정치권 선거에만 눈 멀어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대한항공 여객기들이 멈춰서 있다. 연합뉴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외환위기가 심각하게 진행 중이던 1998년 초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느닷없이 300% 전후의 보너스를 손에 쥐고 기뻐했다.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에‘구조조정’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였다. 모든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에 목을 맸다.

삼성그룹이 당시 소리소문 없이 2년치 월급을 주면서 수 만명을 명예퇴직시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삼성그룹 직원의 5분의 1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룹 입장에서는 체력단련비 자녀학자금 건강보험금 등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였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삼성그룹 최고위 인사의 얘기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엄청난 숫자의 직장인들이 기업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를 잃지 않더라도 임금이 대폭 삭감됐다.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처음 알게 됐다. 대우그룹을 비롯한 적지않은 기업들이 쓰러졌다.

당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우리나라 양대 항공사도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원ㆍ달러 환율이 1,800선을 넘어가면서 유류비 등 항공기 운항비용이 급등했다. 게다가 여객과 화물 수요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 나마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항공료에 대해서는 달러로 결재가 되면서 일부 헤지(hedge)가 가능했다.

당시 대한항공 운영 항공기 112대 중 임차기는 14대뿐이었다. 대한항공은 대부분의 항공기를 자체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달러 가격이 급상승하자 대한항공은 항공기를 일단 매각한 후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달러를 확보했다. 환차익을 크게 얻은 것이다. 절묘한 한 수였다. 그래서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그 해 3,000억원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다. 영업수지는 부실했으나 항공기 매각으로 수익이 크게 늘어났다. 다음해 초 대한항공 임직원이 두둑한 특별보너스를 받게 된 이유였다.

반면 달러 베이스로 항공기를 임차했던 아시아나항공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달러 가격이 폭등하면서 그만큼 지불해야 할 비용이 늘어난 것이다. 항공사들은 석유파동이나 금융위기 등이 닥쳤을 때 가정 먼저 피해를 본다. 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불요불급한 지출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업종이다.

항공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등 일부 국가만 겪은 것이라 미국이나 유럽 등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그래서 항공기라도 팔고 다시 임차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모든 항공사들이 위기라 항공기 매각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역풍을 고스란히 항공사 스스로 감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이번에 본격적인 경영난을 겪고 있다. 외환위기 때도 특별보너스를 지급했던 대항항공이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16일부터 올해 10월 15일까지 6개월간 직원 휴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전체 직원 2만명의 70%인 1만4,000명이 휴업하게 된다.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휴업보다는 사실상 휴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6개월이 지난 뒤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분위기다. 이미 임원들은 30~50%의 급여를 반납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오너 일가의 남매간 경영권 분쟁까지 심각하다. 외우내환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래서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오너 가족들이 힘을 합쳐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데 분쟁이나 일으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올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는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향후 버틸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한 현대산업개발도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고 있다.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을 뿐 다른 업계에서도 코로나19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서서히 영향권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우선 기업 재무상태에 따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가 관건이고, 추후 생존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미 자영업이나 중소기업들은 초토화된 곳이 많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할 지 알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33억명의 노동자 중 81%인 약 27억명이 코로나19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실상 정규직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가 코로나19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얘기다. 숙박업ㆍ요식업, 제조업,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 해고 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에 따른 대재앙은 이제 시작이다. 향후 어떤 양상으로 번져나갈 지는 신도 모를 일이다.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심각한 것은 대량실업에 대한 우려다. ‘병사(病死)냐 아사(餓死)냐’의 선택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기업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를 감당할 수 있는 한계 기간은 4.9개월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5개월안에 승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우리 정치권은 총선에 눈이 멀어있다. 안타깝다.

조재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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