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취재 도중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면서 한 감염내과 교수의 말이 뇌리에 남았다.
“감염병 학자 관점에서 가장 손쉬운 대책은 다 막아버리는 겁니다. 모든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직장을 폐쇄하고 아무도 못 다니게 하면 그게 제일 안전하겠죠. 그런데 방역 말고도 고려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요.”
방역 효율성만 보면 통제가 가장 좋은 방법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될 시민 기본권과 경제, 외교 등 함께 살펴야 할 다른 가치가 많고, 그래서 방역 의사결정에는 늘 딜레마가 함께한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국내에서도 방역 효율성과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가 잇따랐다. 확진자 동선을 얼마나 자세히 공개할 건지를 두고 개인 신상정보 노출 우려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가치가 맞붙었다. 확산 방지를 위해 교회 예배나 집회를 제한하자 종교ㆍ정치 자유 침해라는 반발도 나왔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둘 중 어느 가치가 우선이라고 무 자르듯 단정하긴 어렵다. 그래도 국민 대다수는 방역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생활의 불편함을 인내했고, 정부 역시 지나친 기본권 침해는 피하려 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방역 성과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아직까지 괜찮은 건 이런 긍정적 상호작용 덕이 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감염병을 향한 본능적 두려움과, 자칫 행정 편의주의와 통제 일변도로 흐르기 십상인 공권력의 본성이 상호작용을 일으킬 때 기본권 보장 요구는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고 묵살될 위험이 적지 않다. 기본권 제한 대상이 격리자나 확진자처럼 소수일 때 다수가 침묵하면 이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최근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정부의 감시체계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배경이다.
당장 7만~8만명으로 예상되는 격리자나 확진자들에게 총선 참정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모든 입국자에게 위치 추적용 전자손목밴드(전자팔찌)를 강제로 착용시킬지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은 앞으로도 더 잦아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방역이 기본권 침해와 통제 강화의 근거로 남용되지 않도록 조화를 이룰 지혜가 절실한 때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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