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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감염병 시대, 기본권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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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감염병 시대, 기본권의 딜레마

입력
2020.04.09 01: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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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프림로즈 힐 공원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한 경찰관이 공원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예방을 위해 귀가를 종용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영국 런던의 프림로즈 힐 공원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한 경찰관이 공원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예방을 위해 귀가를 종용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취재 도중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면서 한 감염내과 교수의 말이 뇌리에 남았다.

“감염병 학자 관점에서 가장 손쉬운 대책은 다 막아버리는 겁니다. 모든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직장을 폐쇄하고 아무도 못 다니게 하면 그게 제일 안전하겠죠. 그런데 방역 말고도 고려해야 할 점이 있지 않을까요.”

방역 효율성만 보면 통제가 가장 좋은 방법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될 시민 기본권과 경제, 외교 등 함께 살펴야 할 다른 가치가 많고, 그래서 방역 의사결정에는 늘 딜레마가 함께한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국내에서도 방역 효율성과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가 잇따랐다. 확진자 동선을 얼마나 자세히 공개할 건지를 두고 개인 신상정보 노출 우려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가치가 맞붙었다. 확산 방지를 위해 교회 예배나 집회를 제한하자 종교ㆍ정치 자유 침해라는 반발도 나왔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둘 중 어느 가치가 우선이라고 무 자르듯 단정하긴 어렵다. 그래도 국민 대다수는 방역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생활의 불편함을 인내했고, 정부 역시 지나친 기본권 침해는 피하려 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방역 성과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아직까지 괜찮은 건 이런 긍정적 상호작용 덕이 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감염병을 향한 본능적 두려움과, 자칫 행정 편의주의와 통제 일변도로 흐르기 십상인 공권력의 본성이 상호작용을 일으킬 때 기본권 보장 요구는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고 묵살될 위험이 적지 않다. 기본권 제한 대상이 격리자나 확진자처럼 소수일 때 다수가 침묵하면 이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최근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정부의 감시체계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배경이다.

당장 7만~8만명으로 예상되는 격리자나 확진자들에게 총선 참정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모든 입국자에게 위치 추적용 전자손목밴드(전자팔찌)를 강제로 착용시킬지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은 앞으로도 더 잦아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방역이 기본권 침해와 통제 강화의 근거로 남용되지 않도록 조화를 이룰 지혜가 절실한 때다.

인도의 지방도시 첸나이에서 1일 경찰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을 위반한 시민들을 단속하며 쪼그려 뛰기를 시키고 있다. 첸나이 로이터=연합뉴스
인도의 지방도시 첸나이에서 1일 경찰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을 위반한 시민들을 단속하며 쪼그려 뛰기를 시키고 있다. 첸나이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중심가에서 한 여성이 1일(현지시간) 순찰에 나선 군인들을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중심가에서 한 여성이 1일(현지시간) 순찰에 나선 군인들을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AFP=연합뉴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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