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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지역에 가면 일진들의 대부… ‘엽문 사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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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지역에 가면 일진들의 대부… ‘엽문 사부’가 있다!

입력
2020.04.09 16:15
수정
2020.04.09 23:4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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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경찰서 박장훈 학교전담경찰관 6년째 운동으로 학생 선도

박장훈 학교전담경찰관이 영화 '엽문'의 포스터와 비슷한 포즈로 카메라를 보고 있다. 대구=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박장훈 학교전담경찰관이 영화 '엽문'의 포스터와 비슷한 포즈로 카메라를 보고 있다. 대구=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대구 성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박장훈(37) 경사는 지역에서 ‘엽문 사부’로 통한다. 중국 무술영화에 나오는 영춘권의 대가 엽문(葉問)이다. 6년째 속칭 ‘문제아’였던 학생들과 운동으로 맺어지면서 제자만 30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군대에서 특수부대를 제대한 제자가 해외 취업 이민을 떠나기 전 대련을 요청해 살짝 긴장하고 있다. 박 경사는 “제자들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는데 특수부대를 전역했다니 신경이 쓰인다”며 활짝 웃는다. 제자의 ‘성장’에 싫지 않은 표정이다.

2014년부터 대구 성서지역 15개 초중고교에서 학교전담경찰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경사가 운동으로 문제아들과 소통하면서 학교폭력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운동은 그만의 방과 후 선도활동이다. 참가 자격은 간단하다.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배운 무술은 반드시 방어용으로 사용한다’는 서약만 하면 된다. 박 경사가 근무 비번일 때 나타나는 성서의 한 체육관에는 수십 명의 제자들이 항상 붐비고 있다.

박 경사는 합기도 5단, 유도 2단에다 응용 유도인 주짓수까지 선수급이다. 청소년들은 체육관에서 간단한 호신술부터 전문 격투기까지 개인별 등급에 따라 지도를 받는다. 1대 1 교육방식이라 무술 단기속성 코스로도 불린다.

화려한 제자들의 별명을 보면 과거를 짐작할 수 있다. ‘달서구 번개’로 통하는 용석이, ‘싸커킥’ 헌오는 모두 동네 싸움에서 패배를 몰랐던 학생들이었다. 그런 싸움꾼들도 박 경사에게 잡히면 30초를 넘기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려는 생각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함께 땀을 흘리다 보니 속마음까지 이해하게 됐어요.” 박 경사는 “진심이 통하니 모든 것이 풀렸다”며 뿌듯한 듯 미소를 지었다. 운동이 없는 날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불이 난다. 인생 상담도 그의 몫이다.

격투기 선수 지망생도 나왔다. 걸핏하면 주먹을 휘둘렀던 정호(가명)는 격투기 선수 데뷔를 위해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별명은 ‘블랙 울프’였다. 박 경사는 4년 전 “운동을 가르쳐주겠다”는 구실로 그를 체육관에 불렀다. 대련에서 지면 운동을 배우라는 조건이었다. ‘경찰관을 때려눕힐 절호의 기회’라며 의기양양하던 정호는 20초를 못 넘기고 백기를 들었다. 엽문의 제자가 된 후부터는 폭력과는 담을 쌓았다.

박 경사는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왜소한 몸에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는 일진들의 먹잇감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 옆집 아저씨의 권유로 합기도를 시작했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배웠다고 한다. 운동을 시작하자 잔병치레도 사라졌고 골격도 커지면서 키도 184㎝까지 자랐다.

경찰관이 된 후에는 학교전담경찰관에 자원했다. 문제아들을 제압하겠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알고 보니 그들도 피해자였다. 폭력에 노출된 환경 탓이 컸다. 운동으로 마음을 열면서 그의 제자들은 정의파로 변신했다.

“청소년기에는 누가 나침반 역할만 제대로 해줘도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엽문’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에 제자를 ‘이소룡’으로 만든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대구=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박장훈 경사가 폭행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온 학생을 상담한 후 팔목을 걸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구=김민규 기자 wihtekmg@hankookilbo.om
박장훈 경사가 폭행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온 학생을 상담한 후 팔목을 걸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구=김민규 기자 wihtekmg@hankookilb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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