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근성이라느니 집단주의, 혈연과 지연에 연연한다느니 한국사람들이 공유하고 드러내는 독특한 문화심리적 특성들을 비판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에 퍼진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선진국이라 일컬어졌던 서구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바이러스 확산이 완화되어 가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오히려 그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던 우리의 독특한 문화심리적 특성들이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2월 말에 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많은 나라였지만 한 달 뒤 세계 10위가 되었고, 4월 7일 기준 세계 17위가 되었다. 순위가 뒤로 밀리는 데에 이렇게 다행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기분까지 들게 한다. 매일 아침 브리핑에서 보이는 뿌리염색의 시기를 아주 많이 지나버린 질병관리본부장의 흰머리만큼 우리는 최일선에서 방역을 위해 애쓰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의 노고가 아깝지 않게 만드는 국민들의 협조가 결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우리가 독재정권하에 살아본 경험이 있어 국가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불행했던 과거가 지금이라도 어떤 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보인다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다른 데서 이유를 찾고 싶다. 우리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때 국가의 부채를 갚기 위해 장롱 속 금을 꺼내 금 모으기 운동을 했던 국민이다. 지금 대규모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의 서구사회는 개인주의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개인의 자아실현이 궁극의 가치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매우 중시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국가의 개입과 간섭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등학교에서 ‘자유’에 대해 배울 때, 외부로부터의 구속이나 강제, 방해가 없는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 하고, 반대로 자신이 선택한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상태를 ‘적극적 자유’라고 배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가 보장되려면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복지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말하자면 적극적 자유는 국가에 의한 자유인 것이다. 1997년에 있었던 금 모으기 운동은 내 재산을 국가에 내어놓음으로써 우리나라가 나의 적극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현재의 나의 소극적 자유를 포기하는 셈인 것이다. 개인주의 문화권인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이 나랏빚을 갚겠다고 결혼 반지를 내놓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처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국민의 사회문화적 특성은 매우 독특한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해 있다. 개인을 독립된 존재로 보기보다는 집단에 속해 있는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집단 속에서의 조화나 화합이 중요하며 개인의 권리보다는 의무가 강조된다. 오죽하면 일부일처제임에도 불구하고 ‘내 남편’이 아니라 ‘우리 남편’이라고 말할 정도로 집단주의적 문화는 일상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지금 이 글에도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그런데 국내외 많은 심리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는 집단주의뿐만 아니라 ‘가족확장성’이라는 매우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조직을 가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엄마도 아닌 친구의 엄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생전 처음 보는 가게의 주인도 ‘이모’라고 부른다. 이런 가족확장성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사태에서는 이 가족확장성은 연대의식으로 빛나게 된다. 남을 근본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할 때 남을 도울 수 있는데, 이런 연대의식은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도 대구시의사회 호소로 의료인 수백명이 전국 각지에서 대구로 달려가게 했고, 한 회사는 단 며칠 만에 의료진들을 위한 방호복 만 벌과 의료용 고글 2,000개를 확보해 전달했다.
아마 한국은 “식사하셨어요?”를 인사말로 쓰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이렇게도 밥을 먹었는지가 중요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구 경북지역에서 애쓰는 의료진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밥 먹는 것도 여의치가 않다는 소식에 남일로 그저 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몇 시간을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어느 통닭 맛집 사장님은 통닭 75마리를 택시에 실어 대구의 한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고, 대구의료원 앞에는 ‘힘내라’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과 간식이 1,000개가 넘게 도착했다고 한다.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시에서 “인간은 섬이 아니다. 누구도 홀로 온전치 않다… 누구의 죽음이든 나를 약해지게 만드는 것은 내가 인류의 일부이기 때문이리라”라고 한 것처럼 누구도 홀로 존재하는 개인일 수만은 없다. 우리는 우리다. 우리가 우리라는 연대의식으로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부터라도’의 자세로 이 사태를 계속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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