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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유람] 군대에서 ‘벤처 예비군’을 육성하는 이스라엘

입력
2020.04.11 04:30
수정
2020.04.12 1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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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ㆍ수학으로 선발 ‘탈피오트 부대’

군에선 국방 기술ㆍ보안 연구하고

전역 후엔 정보통신 스타트업 변신

9년 복무에도 최고 인재들 몰려

이스라엘의 군인들. PxHere 제공.
이스라엘의 군인들. PxHere 제공.

<2>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강국이 됐나

※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이스라엘은 외관상 작은 나라다. 인구는 800만명 수준이며, 영토도 남한 면적의 5분의 1 정도로 강원도 크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중심으로 한 벤처 분야에선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 최강 국가이다.

그 바탕에는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창업 활동이 있다. 1인당 벤처 창업률이 단연 세계 1위다. 창업 건수뿐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기업도 많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 중 이스라엘인 회사가 유럽 국가 전체를 합친 회사보다 더 많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런 이유로 세계 벤처 투자자들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CIA 통계정보 연감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투자된 벤처캐피탈 투자 액수는 국민 1인당 기준으로 미국의 2.5배, 유럽의 30배, 중국의 80배, 인도의 350배에 이른다. 비결이 뭘까. 정답은 의외의 곳, 바로 ‘군대’에 있다.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군대문화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왔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을 시작으로 1956년엔 수에즈운하 전쟁, 1960년대 들어서는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촉발된 6일 전쟁, 1970년대에는 욤 키푸르 전쟁 등을 겪었다. 전쟁 외에도 크고 작은 쿠데타나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국방과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국가적 화두로 떠올랐다.

우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도입했다. 남성은 3년, 여성은 2년간 이스라엘방위군(IDF)에 복무한다. 하지만 주변 아랍 국가들보다 적은 인구수로 국방력을 유지하려면 좀 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수평적인 군대 문화다. 원래 군대는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문화가 일반적이다. 전쟁 시 일사불란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상사의 명령을 따르게 하려면 평시에도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 문화는 정반대다. 이스라엘 군대에선 작전 상황을 상급자와 하급자가 토론해 결정한다. 지시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하급자가 상급자를 설득하는 장면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책임과 권한이 하급자에게 상당 부분 위임돼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원래 군대는 하급자에게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데,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포로로 잡혔을 때 적국에 정보가 유출되는 위험을 최대한 낮추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이 같은 군대 문화는 인구 부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에 가깝다. 군대조직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를 갖게 되는데, 도시 국가 규모인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 군대처럼 층층이 여러 단계의 조직체계를 갖추기 어려웠다. 특히 이스라엘 군의 피라미드 구조는 위보다 아래 숫자가 현저히 적다. 일례로 미국의 장교 대비 사병 비율은 1대 5 수준이지만 이스라엘은 1대 9 수준이다.

하급자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의 폭이 커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대규모 군사로 구성된 군대는 작전 중 유실되는 인원이 있어도 동급의 다른 후임자를 쉽게 대체할 수 있다. 각각의 구성원이 제한된 정보만 갖고 있다 하더라도 조직 전체가 와해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조직이 단출해 특정 직급을 대체할 동일 직급의 인원이 적거나 심지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장에서 상급자 내지 동료가 유실된 상황에서도 충실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군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군대조직이 ‘벤처 인큐베이터’로

남녀 불문하고 모두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군대의 수평적 조직문화는 국민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어느 국가보다 학력, 재산, 출생에 따라 차별을 두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

고작 2~3년간의 군생활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줬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선 현역 복무가 끝이 아니다. 병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강도 높은 예비군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현역군처럼 몇 주 혹은 몇 달간 재훈련을 받으며, 수시로 실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훈련에 임하는 강도와 기간이 남다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수시로 발생한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예비군으로 군대에 입대하면 사회적 지위와 달리 군 계급에 따라 상하관계가 다시 형성된다. 갓 대학을 입학한 청년 장교가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지시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회사 사장에게 부하직원이 지시를 하는 경우도 흔하게 벌어진다.

주목할 점은 군대와 예비군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만의 병영문화가 스타트업이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우선 이스라엘 군대문화 자체가 스타트업 조직과 닮은 구석이 많다. 스타트업 조직 역시 단출한 피라미드 구조여서 대체 인력이나 백업 인력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직원이 회사 전반의 상황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원들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군생활을 거친 이스라엘 국민들은 스타트업만의 조직문화를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투자자를 모으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하더라도 전혀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이스라엘 국민들은 군대에서 스타트업 환경을 먼저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벤처 예비군’ 양성소, 탈피오트 부대

물론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수평적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상황판단이나 문제해결능력만으로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을 말할 수는 없다. 어느 분야보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ICT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ICT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게 된 배경에도 군대가 있다.

국방 산업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분야로 꼽힌다. 국방력은 정보에 기반하고 있고, 사이버전쟁에 대한 대비 또한 중요한 덕목으로 부각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군대 내부에 ICT 관련 여러 전문 부대를 창설하여 운영 중이다. △테러 조직의 자금을 추적하기 위한 부대, △테러 단체의 온라인 통신 내용을 감청하기 위한 부대, △최첨단 전자 장비를 활용한 화기 제작을 위한 부대 등이다. 이 중에는 입대하기 위해 수십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부대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탈피오트 부대이다. 탈피오트(Talpiot)는 히브리어로 ‘최고 중의 최고’를 의미한다. 매년 이스라엘 고등학교의 상위 2퍼센트, 약 2,000명의 학생들이 탈피오트 프로그램에 지원해 보도록 권유 받는다. 이들 중 10명 가운데 1명 정도만이 물리학과 수학을 중심으로 한 시험에 통과하여 탈피오트에 입대할 수 있다.

탈피오트 부대에 선발된 인원은 최고 명문인 히브리대에서 수학ㆍ컴퓨터공학 등 이공계 과목을 40개월 동안 공부한 뒤, 현역병으로 총 9년간 복무한다. 복무기간이 여타 현역병에 비해 6~7년 더 길다. 그럼에도 많은 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이유는 이후 사회생활에서 커다란 경력 사항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국민들이 군대에 복무하는 과정을 제대 이후 사회생활에 직접적인 경력 사항이 되도록 사회구조를 설계하였다. 단적으로 군 재직시절 어떠한 보직을 맡았는지가 어느 학교, 어느 학과를 졸업했는지보다 더 중요하다. 탈피오트 부대원들은 군 복무시절에는 미사일 등 국방 관련 기술과 사이버 보안 등 연구개발(R&D)을 하면서 이스라엘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고, 전역 후에는 ICT 분야의 창업자가 되어 이스라엘 혁신 생태계의 주축으로 활동하는 경로를 밟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들이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고 자국의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창업 활성화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기존산업이나 사회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전략으로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려 시도하는 국가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는 게 사실이다. 철저히 자국 상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혁신 생태계를 창출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창업왕국을 조성한 이스라엘의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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