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배심원들 무죄 가능성 고려 안해”… 1ㆍ2심 뒤집어
가톨릭 서열 3위까지 올랐던 호주 성직자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 3년 만에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대법원이 1ㆍ2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증언에만 의존한 섣부른 단죄인지, 부실한 사법체계의 폐해인지, 논란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ABC방송 등 호주 언론에 따르면 대법원은 7일 1990년대 5건에 걸쳐 13세 소년 성가대원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 펠(78) 추기경에게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배심원단은 2018년 12월 펠 추기경에게 유죄평결을 내렸고 이듬해 3월 하급심은 그에게 징역 6년형을 언도했다. 빅토리아주 항소법원 재판부도 그 해 8월 형량을 유지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배심원단이 재판에 제시된 증거를 똑같이 고려하지 않았고 범행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에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날 판결은 대법관 7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펠 추기경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이날 400여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석방됐다. 그는 교도소를 나서며 “원고를 탓하지 않겠지만 나는 심각한 부정의를 겪으면서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처와 고통은 이제 충분하다”면서 화해를 청했다.
호주 국적인 펠 추기경은 교황청 권력서열 3위인 재무원장으로 일하던 2017년 6월 아동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해 재판에 회부된 가톨릭 성직자 중 최고위급 인사였다. 그는 이후 줄곧 결백을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펠 추기경이 호주 멜버른 대주교 시절 멜버른 성당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변호인들은 “대주교는 미사가 끝나면 항상 신자들을 만나 교회 물품 보관실에서 아이들을 습격했다는 원고 측 주장은 불가능하다”고 적극 반박했다.
여론은 분분하다. AFP통신은 “이번 재판이 피해자 측 고발 내용에 크게 의존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원고 측 변호인은 “피해자 가족은 배심원단의 유죄평결이 뒤집힌 데 분노하고 있다”며 “더 이상 호주 사법체계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망한 피해자 아버지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은 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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