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에 보내던 송금액 급감… 멕시코 대통령 “가족 잊지 말라”
요르단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의 통행금지 조치를 완화한 지난달 30일 수도 암만의 한 환전소 앞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암만=EPA 연합뉴스

“이 곳 월세 걱정 못지않게 매월 제가 보내는 300달러에 의존해 손주들을 돌보는 고향에 있는 딸들 걱정도 큽니다.”

이집트에서 8년간 가정부로 일해 온 필리핀인 오시건 케세레스(47)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자신을 고용했던 유럽인 가정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실직했다. 집주인에게 월세 납부일을 늦춰달라고 설득 중이라는 그는 “무엇보다 손주 먹일 우유 한 병 사줄 수 없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급속히 확산하자 아직까지 수치상으로는 확진자가 그리 많지 않은 빈곤국들이 빠르게 생활고에 내몰리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온 선진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손쉬운 해고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 의존도가 높은 남미ㆍ아프리카ㆍ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대량 실업이 전 세계 수백만 가정의 복지와 건강을 위협으로 몰아넣는 일종의 ‘나비효과’다.

WP는 경제 타격이 가장 우려되는 국가로 필리핀을 꼽았다. 필리핀의 지난해 해외송금 유입액은 335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른다. 크루즈선사들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줄줄이 운항을 중단하면서 이미 수백명의 필리핀 선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영어가 가능해 미국이나 중동 산유국의 가정에서 일하던 필리핀 출신 보모들이 해고되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남미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미국 싱크탱크 미주간대화(IAD)는 “올해 남미 국가들의 해외송금 유입액이 전년 대비 7~1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멕시코 미초아칸주(州)의 경우 전체 450만명 중 절반이 해외송금 수혜자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 이주 자국민을 향해 “상황이 어렵겠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잊어선 안 된다”며 본국 송금을 중단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네팔ㆍ방글라데시ㆍ인도 국적의 해외 이주노동자는 3,000만명을 넘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방글라데시의 경우 농촌 거주민 대부분이 도시나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송금에 의존하고 있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수입이 뚝 끊겼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 일하는 소말리아 근로자들은 매년 본국으로 10억달러 이상을 송금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궂은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 실직과 감염의 위험에 동시에 노출되는 일도 허다하다. 최근 카타르의 인권단체는 2022년 개최 예정인 월드컵경기장 건설 이주노동자들이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상태로 집단격리된 채 임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를 고발했다.

2017년 세계은행(WB) 통계에 따르면 해외송금 유출이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순이다. 사우디는 전체 인구 3,000만명 중 3분의 1이 외국인이고, 특히 민간부문 노동인력은 80%가 외국인이다. 이들 국가가 코로나19의 충격을 받을 경우 결과적으로 해외송금액에 의존하는 빈국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딜립 라타 WB 송금업무 부문장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해외송금액 감소는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수많은 빈곤가정이 생명선을 상실한다는 의미”라며 “이들의 건강과 교육은 물론 궁극적으로 인적자본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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