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19 석인경 대한민국떡방 대표와 대구미리내가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를 강타했다. 코로나19의 집중 포화에 시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역시 대구였다. 국란 때마다 발 벗고 나서서 애국심을 보여준 대구시민의 저력이 되살아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 사람들은 꽁꽁 문을 닫고 자발적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생필품을 사 모으지도 않았고 폭동도 없었다. 코로나19 일선에서 지친 기색으로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쉬고 있는 의료진을 위해 자원봉사의 손길이 넘쳐났다. 전쟁 속에도 꽃은 피어나듯 대구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코로나 백신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얼마 전 출간된 ‘칭찬합니다’ 책자의 주인공 석인경(대한민국떡방. 대구 달서구) 대표도 팔을 걷어붙였다. 소속된 미리내가게 회원들과 코로나19 일선에서 봉사하는 의료진을 위해 도시락을 쌌다.
시작은 이러했다. 코로나19로 주문이 줄어든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석 대표도 같은 입장이었지만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석 대표는 미리내가게 회원 모임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견을 올렸다. “부족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자”며 모두가 의기투합했다.
각자의 매장에서 판매되는 떡, 샌드위치, 빵, 쿠키, 과일 등을 모아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석 대표를 비롯해 정환철베이커리(정환철), 열두광주리(이은수), 버거데이(권영기), 바다횟집(박정철), 누리컴퓨터(최성광), 언니옷장(이혜영), 과일향기(김경은), 박소희 씨가 동참했다.
2월 28일, 영남대병원선별진료소에 도시락 200개를 전달했다. 이후 수성보건소에 200개, 동산병원에 200개를 후원했다. SNS를 통해 사연을 접한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을 보내왔다. 석 대표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더 많이 후원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뻤다”며 울먹였다.
SNS(인스타그램)로 쪽지가 날아왔다. 뉴스를 보고 ‘상황이 위급한 보훈병원에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서울에 사는 후원자가 ‘의료진에게 떡을 후원하고 싶다’면서 96만원을 보내왔다. 석 대표는 보훈병원 코로나상황실에 전화를 했다. 통화중 ‘의료진들이 의자를 붙여서 쪽잠을 자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떡보다는 간이침대를 후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원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떡대신 간이침대로 물품을 변경했다. 간이침대 15개와 베게, 무릎담요를 전달했다. 후원자도 “코로나상황실에 꼭 필요한 물품이 전달되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석 대표는 “전달하는 입장이지만 뿌듯하고 감사하고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안강할배’라 불리는 정동문(경주 안강읍)씨는 형편이 어렵지만 나라에서 지원하는 생활비를 아껴서 샤프펜슬 무료 나눔을 실천해왔다. 정 씨는 “대구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도울게 뭐 없을까, 가진 게 샤프펜슬밖에 없다”면서 샤프펜슬 30자루를 보내왔다. 점점 각계각층에서 의료진 도시락과 물품지원이 많아졌다. 석 대표는 소외계층에 눈길을 돌렸다. 성서복지관(어르신)과 상인복지관(아동)에 간식도시락을 100세트씩 후원했고 학산복지관에 불고기 도시락을 후원했다.
“작은 사랑이지만 이 모든 것이 전국에서 후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미리내성금도 보내주고 응원 문자와 격려 전화도 주셨어요. 미리내도시락을 만들면서 먼저는 일거리가 생겨서 행복했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한다는 자긍심과 애국심도 느꼈어요. SNS에 올린 미리내사연을 보고 작은 나눔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응원과 격려 속에 매일매일이 감동이었고 감사했습니다. 코로나사태로 잃은 것도 많지만 살아갈 날의 에너지를 가득 채웠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코로나19도 이겨낼 거예요. 우리 대구 힘내세요.”
미리내가게는 전국 600여 곳과 대구에는 9곳이 있다. 미리내가게 손님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발적으로 ‘미리 내는’ 방식이다. 고객들의 참여로 나눔을 실천하고 쉬운 기부문화 확산을 유도한다. 미리내가게는 정기모임을 통해 나눔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한다. 매월 매장별로 돌아가며 ‘별을 만드는 사람들 청소년 간식후원’을 지원한다. 올해 3월부터는 홀트아동복지회에 월 5만원씩 정기후원도 시작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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