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곤란 동반한 환자들 혈장 투입 후 회복…효과 ‘입증’
최준용 교수 “스테로이드 투여와 병행 시 효과…코로나19 치료에 대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완치자의 회복기 혈장을 이용한 치료를 통해 완치판정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을 통한 완치 사례는 대유행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최준용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 연구팀은 상태가 위중했던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 2명에게 완치자의 혈장을 주입해 치료를 한 결과 2명 모두 완치돼 그 중 1명은 퇴원했다고 7일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급성호흡곤란증후군(ARDS)을 동반한 71세 남성 확진환자 김모씨는 말라리아 치료제와 에이즈 치료제 등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김씨의 양쪽 폐는 모두 심각한 폐렴증상이 발견됐다. 염증수치를 나타내는 C-반응성단백(CRP)수치는 172.6mg/L(정상 8mg/L 미만)까지 상승하는 등 상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연구팀은 완치판정을 받고 2주가 경과한 남성의 회복기 혈장 500ml를 김씨에게 12시간 간격으로 2회 투여했다. 스테로이드 치료도 병행했다.
치료를 받은 이후 김씨는 열이 내리고 CRP도 정상범위로 떨어졌다. 흉부 X-ray 검사상 양쪽 폐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혈장을 투여 받는 동안 특별한 부작용도 없었다. 현재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했고, 신종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와 완치판정을 받았다.
김씨와 함께 혈장치료를 받은 67세 여성 확진환자 이모씨의 경우는 완치판정을 받고 퇴원까지 한 사례다. 기저질환(고혈압)까지 있던 이씨는 확진판정 후 호흡곤란과 왼쪽 폐 상태가 악화돼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씨도 이송 전 김씨처럼 말라리아 치료제와 에이즈 치료제를 투여 받는 등의 조치에도 림프구감소증과 고열이 지속됐다. 스테로이드 치료를 이어갔지만 면역결핍(림프구감소증)이 지속됐고 바이러스 농도도 증가했다. 이송 당시 이씨의 호흡속도는 분당 24회, 산소포화도는 산소 투여에도 93%(일반 평균 95% 이상)로 확인됐다. 면역결핍과 함께 CRP 수치가 314 mg/L까지 상승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이 환자에게도 혈장 치료를 실시하자 상태는 반전됐다. 역시 완치자의 회복기 혈장을 12시간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투여했고, 스테로이드 치료를 병행하자 림프구수가 회복되고 바이러스 농도가 감소했다. 흉부 X-ray 검사에서 폐 상태도 눈에 띄게 회복됐으며 CRP 역시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이씨는 이후 완치 판정을 받고 지난달 말 퇴원했다. 연구팀은 두 사람의 치료 과정을 대한의학회지 최신호에 게재했다. 최 교수는 “두 환자 모두 회복기 혈장 투여와 스테로이드 치료 후 염증 수치, 림프구수 등 각종 임상 수치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 치료에 새로운 전기 되나
신종 코로나 중증환자 치료 방법으로 완치자의 혈장이 주목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결과는 고무적이다. 의학계에선 혈장 내에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중화항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이 확인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중화항체는 바이러스나 독소, 효소 등의 생리활성 물질 등에 결합해 이들의 병원성이나 생물학적 활성을 저해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완치자의 혈장을 이용한 치료는 이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에볼라 바이러스, 조류 독감 등 신종 바이러스 감염에 사용된 바 있다.
아직 치료제나 백신 개발은 아직 요원한 상황에서 국내 의료진이 혈장치료 효과를 입증함으로써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것이라는 평가다. 지난달 31일 방역당국이 완치자의 회복기 혈장을 치료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침마련에 나서는 등 신종 코로나 중증환자 치료수단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 교수는 “회복기 혈장 속에 있는 중화 항체를 통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것이 같이 들어가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조합이 위중한 코로나19 환자에게 시도될 수 있다”면서 “혈장치료가 나름의 부작용들이 있고 대규모 임상시험이 없어 과학적인 증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항바이러스 치료 등 기존 치료방법을 동원해도 효과가 없는 중증 환자들에게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치자의 혈장이 신종 코로나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혈장 확보를 위한 체계가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완치자들이 신종 코로나 항체를 가지는 기간 안에 혈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한 기증자 관리와 의료기관으로의 공급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혈장 기증자를 모집하고 기증된 혈장을 적절히 배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도 혈장 치료 ‘효과’
완치자 혈장을 이용한 신종 코로나 치료는 발원지로 거론되는 중국에서도 효과를 봤다. 2월 8일 후베이성 우한 제1인민병원에서 위중환자 3명이 첫 대상이었다. 병원은 이어 일주일간 10여명의 위중환자를 대상으로 완치자의 혈장 치료를 확대했다. 당시 중난산(鐘南山) 중국 공정원 원사는 기자회견에서 “후베이성의 신종 코로나 환자에게 혈장 치료를 적용해 효과를 봤다”며 “광둥성의 중증환자들에게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치료 효과는 이어졌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격인 중국 위생부 산하 중국의약그룹도 “완치 환자 혈장에서 바이러스 무력화할 항체 발견했고 이를 중증 환자 10명 이상에게 적용해 효과를 봤다”고 공지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초 ‘코로나19 진료방안’ 6판을 내면서 혈장 치료 시행방안을 자세히 기술하면서 본격적인 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달 6일 기자회견에서 “(완치자)1,000명의 공헌으로 1,000명을 구하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당시 중국 의료진은 919명으로부터 혈장 29만4,450ml를 추출해 신종 코로나 환자 154명에게 적용했다.
◇ “만능 아니다” 의견도
하지만 완치자의 혈장 치료가 만능은 아니라는 평가도 만만찮다. 저우치(周琪) 중국 과학원 부비서장 겸 원사가 “혈장 치료는 분명 효과가 있지만 한계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혈장에는 여러 단백질이나 바이러스가 함유돼 다른 환자의 몸 속에서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혈장 공여자와 수혜자의 혈장 항체 농도나 활성이 서로 다르거나 혈장의 비중화성 항체가 사이토카인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중국 의료계에서는 “혈장 치료는 어디까지나 중증 환자에게만 소량으로 적용하고,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단지 탐색적 치료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완치자 혈장을 이용한 치료 지침을 마련 중인 우리 방역 당국도 “혈장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중앙임상위원회를 통해서 임상 사례들을 조금 더 검토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다시 한번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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