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의원선거 투표참여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난 1일 대전역에서 미디어파사드 기법의 ‘빛으로 선거를 그리다’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 제공

4ㆍ15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n번방’ ‘n포세대’ 이슈로 대표되는 여성과 청년정책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본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10대 공약과 공약집을 토대로 각 정당의 여성ㆍ청년 정책을 분석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과 여론에 떠밀려 만든 ‘생색내기’ 식 공약이 다수였고, 기존 정책을 답습하거나 과거 공약을 ‘재탕ㆍ삼탕’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 ‘제2 n번방’ 막기엔 역부족 젠더폭력 공약

‘혜화역 시위’ ‘웹하드 카르텔’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자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공약은 새로운 범죄 유형을 막을 선제 대응책은 보이지 않는, ‘사후약방문’ 성격이 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불법촬영물 소지자 처벌 공약을 담았다. 현행법은 불법촬영물 촬영ㆍ유포자 처벌 규정만 담고 있기 때문에 처벌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긴 하다. 주요 당은 불법촬영물 소지자까지 처벌의 범위를 넓이는 데도 한목소리를 냈다. 반면 통합당은 ‘영상 이용 협박’만을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불법 촬영 피해를 ‘영상으로 협박을 받는 경우’로 축소시킨 것이다. 온라인 공간 공급망 단속ㆍ처벌이나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책임 문제를 소홀히 다룬 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정의당은 디지털 성범죄를 일종의 산업으로 규정하고 종식을 위한 ‘국가비전 수립과 법ㆍ제도 전면 정비’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보였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7일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개별 사안마다 ‘급한 불 끄기’ 식으로 단편적 접근을 반복하고 있다”며 “성착취 산업의 고리를 끊기 위한 종합적ㆍ구조적 인식이 21대 국회에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총선 목전 ‘n번방 사건’이 20대 유권자 주목 이슈로 부상하자 이미 지난달 공약을 제출한 거대 양당은 보완책 마련으로 분주해졌다. 5일 민주당과 정부의 당정 협의에서 백혜련 의원은 “정부여당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대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당도 최근 황교안 대표의 ‘n번방 호기심’ 발언으로 뭇매를 맞자 뒤늦게 ‘n번방 사건 태스크포스(TF) 대책위원회’를 꾸리기는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경우 총선 이후 법 통과를 약속한 상태고, 통합당은 대여 정치공세 소재로 삼는 상황이다.

총선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스토킹 범죄 관련 법안은 민주당, 통합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모두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스토킹법은 15번이나 발의됐지만 한 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발의된 법안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던 정치권이 선거철만 되면 여성 표심을 노리고 기존 공약을 되풀이하는 대표 사례다.

◇ 청년 두고 장사만 하는 거대 양당

통합당은 대표 청년 공약으로 ‘조국방지법’을 내세웠다. 대입에서 정시 모집인원 비율을 50% 이상으로 상향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지원 서류 원본을 영구 보관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의 취지야 좋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다시 선거판에 소환해 정부 실정을 부각하겠다는 정치 의도가 다분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있다.

다른 공약에서도 ‘청년’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통합당은 청년 벤처생태계 조성을 위해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다며 ‘최저임금제 전면 개편’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청년을 앞세웠을 뿐 사실상 주 52시간, 최저임금 관련 재계 입장을 반영한 공약이란 지적이 많다. 최성용 청년단체 '청년담론' 활동가는 "'청년을 위한 정책’인 건지 ‘청년 팔이 정책’인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과도한 ‘정부 정책 우려먹기’로 눈총을 샀다. 민주당은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청년ㆍ신혼부부를 위해 공공주택 1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청년 주거’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청년임대주택을 포함해 공적주택 100만호를 보급하겠다는 내용의 2017년 정부 발표 ‘주거복지로드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민주당의 청년 주거 공약은 집권여당으로서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정부 정책의 복제 버전”이라고 비판했다.

정당별 주요 ‘디지털 성착취 방지’ 공약 및 청년 공약.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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