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개발에 밀려나는 커피 산업(상)
케냐 나이로비 시내에서 교외로 나가는 길의 정체 속에 갇혀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아프리카 대륙이 여전히 미개발, 미개척의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상기씨 제공

지난해 12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을 빠져 나오는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적도의 햇발이었다. 강하지만 따갑지 않은 햇살. 의아하다. 내리쬐는 볕이 눈부시게 강렬한데 따갑지 않다. 더러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오히려 상쾌하다. 찜통 같은 더위와 혹한이 반복되고, 그나마 며칠 안 되는 푸른 날들은 황사, 미세먼지로 잃어버린 우리에게 이 쾌적한 공기는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정오가 조금 안된 시간에 공항 담벼락에 붙은 온도계의 수은은 21도까지 올라와 있다.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나이로비의 기온이 온화한 것은 이 도시가 1,700m 이상의 고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과 쾌적한 바람. 아름다운 지구가 선물한 신선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잠시 시원스레 공항 대로를 달린 차는 곧 수많은 차들 사이에 갇혀 꼼짝 않는다. 3년 전 방문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내 답답해졌다. 검은 매연과 흙먼지. 조금 전 공항을 나서며 심호흡 했던 공기는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어디 이곳뿐일까. 인간은 늘 날씨와 계절 탓을 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선물마저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다.

나이로비는 여전히 건설 중이다. 밀려드는 자본의 기회는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닦는다. 우마가 달리던 길은 자동차로 메워지고, 자동차들이 내뿜는 검은 매연이 도시를 답답하게 만든다. 연이어 울려 대는 경적과 도시의 소음까지 더해지면 천상의 자연 환경은 어느 감각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튿날 이른 아침, 도심의 호텔을 빠져 나와 나이로비 동북쪽 방향으로 향했다. 키암부 카운티는 나이로비의 동쪽에서 북쪽 외곽을 돌아 서쪽까지 고깔모자처럼 수도를 둘러싸고 있다. 도심에서 키암부로 나가는 길은 크게 세 갈래다. 서쪽 키쿠유로 올라가는 길과 키암부 연방정부가 있는 북쪽 길, 그리고 루이루와 티카로 가는 동북 방향의 길이다. 특히 티카로 오르는 길은 니에리, 오타야, 키리냐가 등 케냐의 주요 커피 산지로 이어지는데 이 곳들을 지나면 아프리카 두 번째 봉우리인 케냐산에 이른다.

이방인에게 나이로비와 키암부의 경계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도심은 변두리 주거지역으로 이어지더니, 다양한 작물들이 심어진 농장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도로 포장공사를 하느라 분주하고, 빈 공터에 담을 치고 땅을 판다는(For Sale) 광고판을 붙여 놓은 곳들이 더러 눈에 띈다. 아직 도시화 되지는 않았지만, 곧 주거단지로 바뀔 것 같은 그런 어중간한 풍경 속에 커피 농장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케냐는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2010년 4,000만명이던 인구는 불과 10년 동안 1,400만명이 더 늘어났다. 케냐의 중장기 발전 마스터플랜인 비전 2030의 2단계 사업(MTP2)이 2017년 마무리되고, 2018년부터 3차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부동산 개발은 케냐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며,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인프라 개발과 주거, 상업지구 건설 붐은 이런 변화를 증명한다.

케냐 정부는 서민주택 공급이라는 명목으로 지난 5년간 매년 10~25%에 달하는 공공 민간주택 건설 증가율을 보여왔는데, 이후 5년간 2억 6,000만 달러 규모의 100만호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 신규 주택들은 나이로비 중심지의 터에 지어 지기도 하지만, 좀 더 토지가격이 저렴한 시 외곽으로 나무 줄기가 뻗어 오르듯 도로망을 따라 퍼져 나갈 예정이다. 오랫동안 케냐의 대표적인 커피 산지였던 키암부 또한 도시화의 흐름에 밀려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케냐 시민들은 나이로비에서 키암부로 가는 길에 있는 카루라 숲 주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6㎞에 이르는 길의 언덕 양편으로 커피 농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옥한 커피 농장들은 도시의 주택 수요에 돈을 쥐고 달려드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낚아 채이고 있다.

키암부로 가는 길에 동행한 키마니씨에게 도시 개발과 커피 산업에 대해 물었다. 그는 키암부에서 태어나 평생 커피 관련된 일을 해와 누구보다 키암부 커피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케냐의 커피 산업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케냐 커피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특히 키암부 지역의 생산량 감소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이다. 도시화가 점점 더 수도 외곽으로 진행되면서 이 지역의 커피나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키암부 타운뿐 아니라, 기퉁구리, 키암바, 가툰두, 루이루 등 카운티 내 커피 재배지역들이 빠른 속도로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고 있다. 도심에 가깝고, 주요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근교 지역은 케냐의 중, 상위 계층들의 주택단지로 이상적이다. 수 년 사이 이런 지역의 땅값이 5배나 올랐으며, 5년간 약 1만㏊의 커피 농장들이 다른 용도로 전환됐다.

키암부에 있는 드넓게 펼쳐진 한 커피 밭으로 들어갔다. 마치 브라질의 대규모 플랜테이션 커피 농장을 연상케 하는 큰 규모의 농장이다. 커피나무는 일렬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고, 커피 나무 사이로 한창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도로 정비와 건축 공사로 복잡했던 거리의 모습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물론 이 곳 역시 개발의 위협 앞에 놓여있다. 이미 가파르게 오른 토지 가격은 수익성이 낮은 커피 재배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많은 커피 농지들이 그렇게 사라져 왔고, 앞으로도 눈에 띄게 사라져갈 것이다.

한창 커피나무의 가지 치기 작업을 하는 키암부 지역의 주민. 도시화로 인해 농지가 줄어들면서 오랫동안 커피 농사로 생업을 이어온 이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키암부 지역의 커피 농장들은 그늘 재배 방식보다 태양 재배 방식을 선호한다. 커피나무는 다른 작물들처럼 일렬로 줄지어 재배되고 있고, 이로 인해 유기 비료를 뿌리거나 관개를 하기 용이하다. 물론, 그에 따라 생산량을 높이고 상대적으로 병충해 관리도 쉽다. 북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에티오피아 남부 지역만 해도 바나나 나무 등 열대 우림 아래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전통 농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삼림은 재배상의 관리 측면에서 경제적, 환경적으로 도움이 된다. 숲의 나무는 영양소의 재순환을 통해 비료 사용을 줄여 주고 토양의 수분을 보존함으로써 관개가 용이하도록 하며, 토양이 잘 결합하게 해서 침식과 산사태 위험을 줄여 준다.

태양 아래 넓게 조성된 키암부의 농장(특히 대규모 농장)들은 이미 숲과 숲을 이루는 생물 다양성을 파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숲의 근간이 됐던 다양한 나무들이 베어졌고, 그 아래 잡목들과 수풀, 그리고 숲을 근거로 살아가는 새와, 박쥐, 개구리, 풍뎅이들과 그보다 셀 수없이 많은 미생물까지 사라진 토지 위에 커피 나무가 심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간된 커피 농장이라고 해서 환경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커피나무로 빽빽한 농장은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의 유기적 순환구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 나무들이 파헤쳐지고, 그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워진다면 자연은 다시 한 번 인간의 탐욕에 자리를 내주게 되는 셈이다. 숲에서 밭으로, 다시 주거지역으로 바뀌는 개발의 과정에서 자연은 점점 더 훼손되고, 이로 인한 기후변화 등 다양한 대가를 온 지구 생명체와 함께 치를 것이다. 키암부의 커피 농장들은 1차적인 삼림 훼손의 주범이었지만, 이제는 도시화라는 더욱 탐욕적인 도전 앞에 피해자로 직면해 있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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