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과 하나은행, DGB대구은행이 6일 금융감독원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관련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에 “답변 시한을 한 차례 더 미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해 말 이후 한 달 간격으로 벌써 네 번째 연장 요청입니다.
이들의 재연장 요구 명분은 표면적으로는 ‘검토 시간 부족’입니다. 사외이사가 지난달 바뀐데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신이 없어 사안을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금감원이 재연장에 응할 경우 답변 통보 시한은 한 달 뒤로 또 연장됩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기업이 환차익을 얻지만 반대의 경우 손해를 떠안도록 설계된 상품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당시 가입 중소기업들이 대규모 피해를 입고 줄도산 했습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키코 피해기업 네 곳에 대해 은행들이 총 255억원을 배상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신한(150억원) 우리(42억원) KDB산업(28억원) 하나(18억원) 대구(11억원) 씨티(6억원) 은행 등입니다.
그러나 넉 달이 지난 지금까지 배상을 수용한 곳은 지난 2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로 은행장 중징계를 앞뒀던 우리은행뿐입니다. 지난달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외국계 씨티은행이 분쟁 조정결과를 아예 수용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2008년 발생해 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10년)가 지난데다 한 번 법률적 판단(대법원 판결)을 받은 건에 또 다시 배상을 하라는 것은 배임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번에 네 번째 재연장을 요청한 세 은행도 결국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하기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금융권에선 높습니다. 당장은 ‘시한연장’이라는 모호한 카드를 꺼냈지만, 국책은행조차 수용 불가 방침을 밝힌 안건을 시중은행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키코 배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윤석헌 금감원장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윤 원장은 “키코 문제를 분쟁조정 아젠다로 올려놓은 것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언급할만큼 취임 초부터 키코 배상을 주도해왔습니다. 그럼에도 피감독 기관인 은행들이 잇따라 수용을 거부하거나 시간 벌기에 나서면서 감독기관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금감원 분쟁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수락하지 않아도 은행의 책임은 없지만, 자칫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갑(甲)인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날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DLF 징계 불복에 이어 키코까지 은행들의 ‘반기’가 이어지는 상황은 참으로 낯선 풍경”이라는 관전평이 나옵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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