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드라마의 인기가 높다. 한국어를 ‘좀 안다’는 외국인들은 사극에 나오는 낯선 한국어에 호기심을 가진다. 보통 외국인들은 ‘이리 오너라’나 ‘쉬! 물렀거라. ○○ 행차시다’ 같은 말을 보면 번역하려 한다. 한편,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두고 계층과 신분의 차이를 배경으로 탐구하려는 외국인도 있다. 한국말에서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캐내려는 이런 이방인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말을 되새기게 해 준다.
영어 원어민 강사로 한국에 온 20대 미국인이 불쑥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과정이 잘못된 반과 반을 더해 봐도 완전한 하나가 안 된다는 미국 속담이 있는데, 한국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까?”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얼른 답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는 말이 답 찾기를 방해했다. 올바른 가치관을 담은 말이 떠오르지 않자 마치 결과를 예상한 학생에게서 공격받은 기분이었다.
학생에게서 숙제를 받은 지 17년이 되었다. 제대로 된 시작을 강조하는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꿰어 쓸 수 없다’나,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가 가장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과정의 일탈을 꾸짖는 속담이 있는지 여전히 찾고 있다. 속담은 민간에서 만들어져 입으로 전해 내려온 표현이다.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뿐만 아니라, 교훈과 경계를 담은 언어코드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모로 가도 한양에만 가면 된다’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의미라 했다. 그렇지만 선조들이 후손에게 준 말이라면 오히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과 경계로 읽어야 하지 않을지? 그렇게 해석되어야 할 속담이 꽤 많지 않을지? 오늘도 이방인이 준 숙제를 계속 하고 있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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