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악당'의 극단적 이분법으로 진실을 재단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이일규 전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국정감사장의 이일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12월 대법원이 이일규(1920~2007) 전 대법원장의 10주기 추도식을 공식 행사로 연 직후, 법원 통신망에서 그 행사의 타당성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유신 체제가 출범한 이듬해인 73년 대법관이 된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헌정사 최악의 사법 살인이라 불리는 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75년 4월 최종심 판결에서 13명 대법관 중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내는 등 몇몇 전향적인 판결과 일화로 도드라진 이였다.

허용구 대구지법 부장판사(연수원 27기)는 “사법부가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개인 법관의 치적을 칭송하면서 법원을 홍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뒤 “군사정권에서 대법원장을 지낸 이를 추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고 따졌다. 그 글에 반박한 이는 공교롭게도, 김명수 대법원장의 아들인 김한철 전주지법 판사(42기)였다. 그는 이 전 대법원장의 인품과 이력을 들어 추도식의 타당성을 옹호하며 “어두운 시대를 판사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썼다.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반공법 위반으로 15명이 기소돼 징역 1년~집행유예 3년형을 받은 ‘1차 인혁당 사건’에 이어 군사정권이 74년 군법회의에서 민청학련 사건과 엮어 서도원 여정남 등 8명에 대해 ‘정부 전복기도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그들은 대법원이 형을 확정한 지 18시간 뒤인 4월 9일 처형됐다. 당시 이일규 대법관은 ‘피고인 심문 없이 항소심이 진행됨으로써 온전한 변론 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다’며 유일하게 원심 파기 의견을 냈다. 설교 도중 유신 정권을 비판한 일로 77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영근 목사 재판에서도 무죄를 선고하는 등 90년 말 퇴임할 때까지 몇 차례 소신 판결로 ‘사법부 독립’과 ‘헌법 정신’의 가치를 추구했다.

물론 그는 본질적으로 유신 판사였고 시대의 한계 안에서 소신과 원칙을 지키고자 한 이였다. 허용구 판사의 비판도, 한 개인에 대한 폄하라기보다는 여전히 권력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사법부의 현실과, 개인의 미적으로 그 현실을 가리려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 추도식 해프닝은 영웅- 악당의 극단으로 진실을 재단하려는 개인ㆍ집단의 경향에 대한 자성의 계기도 됐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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