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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잔인한 4월은 과학의 달

입력
2020.04.07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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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던” 겨울은 지나갔고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4월이 왔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433행에 이르는 길고 긴 시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확실히 4월은 잔인했다. 중ㆍ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1학기 중간고사가 있었고 대학 때는 이맘때쯤이면 최루탄 연기가 교정을 덮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4월은 더 잔인했다. 아직도 그해 4월 16일의 정오 뉴스를 잊지 못한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봤는데 그게 다 거짓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입에 4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달리기 시작한 때는 2008년이다. 경기도 남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과학의 날’ 행사에 강연자로 초대받았다. 발랄한 두 여학생 사회자가 행사를 소개하면서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인 것 같아요. 중간고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렇게 과학의 날 행사까지 해야 하니 말이에요”라고 (강사를 앞에 두고 하기에는 조금 잔인한) 멘트를 날리자 청중 학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했다. 아이들이 좋다니 나도 좋았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하필 4월이 과학의 달일까?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우리나라에 ‘과학 조선’이라는 대중 과학 잡지가 창간되었다. 잡지의 모토는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로 평범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모티브로 한 소설 광고가 창간호에 실렸다는 것에서 이들의 지향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잡지를 발행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1934년 4월 19일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의 날인 ‘과학 데이’ 행사를 열었다. 이때의 모토는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한 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였다.

일단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4월을 택했다. 그런데 왜 하필 4월 19일이었을까? 4월 19일은 찰스 다윈의 기일이다. (찰스 다윈의 생일은 2월 12일이다. 이때는 너무 춥지 않은가.) 과학 데이는 1938년 5회까지만 진행되었다. 하긴 내가 일제 총독이라고 하더라도 조선 민중에게 과학이 널리 전파되는 것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무려 30년이 지난 1968년에야 과학 데이가 ‘과학의 날’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1960년 4ㆍ19혁명이 일어났으니 4월 19일은 혁명 기념일로 남겨 놓아야 했다. 그렇다면 어느 날로 정해야 할까? 1967년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발족한 날인 4월 21일을 택했다. 약간 촌스러운 선택이기는 했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는 했다. 더 늦어지면 학교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날과 과학의 달이 널리 퍼지게 된 데는 (1996년 한국과학문화재단으로 시작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공이 크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각 학교에 ‘과학기술 앰배서더’를 파견했다. 과학기술 앰배서더란 요즘 말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마치 ‘방정식’처럼 낯설고 어려운 것으로만 느끼는 과학을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이끄는 가슴 설레는 ‘모험’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다. 물론 과학은 어렵다!

2008년만 해도 과학의 날 행사를 치르는 것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교사와 사회의 역량이 그만큼 성장했다.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되었다. 작년에는 대한민국 과학축전을 서울 시내 한복판으로 끌어내어 시민의 축제로 만들었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학교는 물론이고 전국의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은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과학의 달을 즐기는 방법은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온라인 과학축제’를 쳐보시라. 자연스럽게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이언스올’ 페이지를 통해서 전국의 과학관과 국책연구기관의 홈페이지나 SNS로 연결된다.

지금은 21세기다. 언제 어디서나 뉴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과학과 기술을 향유할 수 있다. 여기에 과학기술계가 합심하여 참여하고 있다.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시민과 소통하고 있다.

앞으로는 BC(Before Corona19)와 AC(After Corona19)라는 개념이 등장할 것이다. 모든 교수와 교사, 학생이 인터넷 수업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와 화상회의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정책적으로 수십 년간 추진해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코로나19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엘리엇이 말한 황무지와 4월은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생명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빗댄 것이다. 21세기에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우리의 4월이 잔인할지 말지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여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조금 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자.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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