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포괄적 국제기구인 국제연맹이 1946년 오늘 마지막 총회를 열고 해산했다. 사진은 43년 총회 장면. internationalrelations.org

“세계 평화와 안전, 협력의 촉진”을 위한 인류 최초 포괄적ㆍ정치적 국제기구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1946년 4월 8일 스위스 제네바 연맹 본부에서 회원국 34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총회를 열었다. 연맹 창설 주역으로 193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1864~1958)은 마지막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화의 위대한 과업이 우리가 속한 개별 국가의 좁은 이해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더 거대한 원칙에 달려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이제 연맹은 끝났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 유엔)이여 영원하라.”

유엔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2월 이란 테헤란에 모인 미국과 영국, 소련 수뇌부의 합의(테헤란 회담)로 45년 6월 출범했다. 연맹은 청산 절차를 거쳐 열흘 뒤 제네바 본부 건물을 포함한 2,200만달러 상당의 자산을 유엔에 넘기고 공식 해산했다. 오늘날 유엔 기구의 중추인 상설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노동기구(ILO), 유네스코 전신인 국제지식협력위원회(PCIC), 세계보건기구 전신인 보건기구(HO)도 연맹의 유산이었다.

연맹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대체로 박하다. 연맹은 1차대전을 치른 전승국이 1919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제안과 전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1920년 출범했지만, 최대 주주 격이던 미국이 ‘먼로주의’의 불간섭 외교원칙을 내세운 상원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고, 패전국 독일과 오스만제국(터키)의 가입도 불허됐다. 제국주의와 결합한 민족주의의 발호와 1930년대 침략전쟁, 일본 독일의 잇단 탈퇴 등으로 연맹은 힘을 잃어갔다. 36년 뒤늦게 가입을 허용 받은 소련은 39년 핀란드 침공 직후 제명당했다.

하지만 연맹의 영향력은 사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급격히 약화했다. 몇몇 국지적 분쟁에 개입해 해결한 성공 예는 있지만, 처음부터 한계가 뚜렷했다는 평가도 있다. 군사적 제재 수단이 없었고,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총회는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제였다.

그 한계를 딛고 출범한 유엔 역시 연맹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하긴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에 속수무책인 WHO가, 중구난방인 국가별 방역 대책이, 약탈이라 할 만한 일부 강대국들의 검역ㆍ방역물품 선점 경쟁이 그 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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