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바나나의 유럽 수출을 둘러싼 유럽과 미국의 무역전쟁이 1993년 시작돼 2009년 끝났다. fao.org

‘바나나 전쟁’은 1차대전 전후(前後) 미국의 중미-쿠바 푸에르토리코 온두라스 니카라과 아이티 등- 군사 개입을 칭하는 용어였다. 당시 미국은 자국의 다국적 농산물 기업-유나이티드 프룻 컴퍼니, 치키타, 돌(Dole) 등-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그 기업들과 결탁한 현지 부패 권력을 혁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해병대까지 동원했다. 대표적 수출 농산물이 바나나였다. ‘바나나 공화국’이란 말이 거기서 유래했다.

유럽연합(EU) 출범을 앞둔 유럽공동체(EC)가 1993년 7월, 중남미산 바나나에 국가별 차별 관세를 부과하면서 ‘바나나 전쟁’이 재현됐다. 유럽과 미국의 무역전쟁이었다. 앞서 75년 EC는 ACP(아프리카, 카리브해, 태평양) 지역의 옛 유럽 식민지 46개국의 무역 특혜를 보장한 ‘로메(Lome)협정’을 체결했다. EU 출범을 앞두고 국가별 특혜정책을 EU 단위로 통합한 거였다. ACP 이외의 중남미 바나나 수출국들, 즉 고율 관세를 물게 된 과테말라 멕시코 등이 EC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다자간 무역일반협정(GATT)의 핵심 원칙인 ‘비차별성’에 위배된다는 거였다. 당시 유럽은 한 해 약 25억톤의 바나나를 소비했고, 제소국인 라틴아메리카에서 약 4분의 3을 수입했다.

물론 소송의 뒤에는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있었다. 전통적 공화당 지지 기업인 치키타가 당시 클린턴 정부의 여당인 민주당에 50만달러의 정치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미국은 영국산 린넨, 덴마크산 햄, 프랑스산 치즈 등 유럽산 14개 품목에 100%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WTO는 1999년 4월 7일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를 편들어 특혜와 보복 관세를 함께 철회하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유럽은 수입량 할당 등 비관세 정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ACP를 도왔고, 미국도 보복 조치로 응수했다. 유럽은 환경을 명분 삼아 미국 노후 항공기의 영공 통과를 규제했고, 미국은 유럽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미국 취항을 금지했다. 유럽은 미국산 호르몬 소고기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바나나 전쟁은 2009년 말 EU가 라틴아메리카 바나나 관세 인하에 합의하면서 비로소 실마리가 풀렸고, 2012년 11월 양측이 각기 WTO에 제소한 8건의 분쟁을 일괄 타결하면서 끝이 났다. 2차대전 이후 최대ㆍ최장기 무역전쟁이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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