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나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비포, 애프터 사진이다. 성형수술 이야기가 아니다. 그 선명한 잔영이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봄바람에 살랑대는 샛노란 꽃밭. 나란히 뻗은 바닷가 국도는 벚꽃 터널이 장관이다. 푸른 동해와 연분홍 벚꽃, 샛노란 유채꽃의 삼색 조화가 매년 수십 만 상춘객을 손짓할 만하다.
나는 봄에는 이곳에 가본 적이 없다. 강원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 유채밭이다. 축구장 8배 넓이라 하니 드넓은 꽃밭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씨 뿌리고 거두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그걸 갈아엎는 데는 트랙터 세 대가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유채꽃밭은 한순간 속절없이 잡초밭으로 변했다. 트랙터가 그 휑한 밭 가운데 개선장군처럼 늠름하게 서 있다. 삼척시가 3일 제공한 사진이다.
사진은 냉정했고 냉혹했다. 말라비틀어진 유채꽃밭에서 플래카드는 멋쩍게 약속한다. “내년에 더 예쁜 유채꽃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홍보가 꼭 필요했다면 터질 듯 만개한 벚꽂은 배경에서 빼주지, 나무가 되지 못한 꽃의 운명은 저렇게 갈렸다.
가격이 폭락한 무, 배추도 아니고 이렇게 아름다운 꽃천지를 자기 것이라고, 인간의 손이 무심히 그리고 무참히 폐기한 적이 있었을까. 한 송이 들꽃도, 한 포기 풀꽃도 무정설법이 있다 하거늘. 그 추억은 또 다 어디에 묻으란 말인가. 알싸한 꽃향기에 포개진 첫사랑도 있겠거늘. 나는 꽃밭을 트랙터로 뭉개버린 삼척시의 행위가 행정편의적이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도 묘책이 없었을까. ‘오죽했으면’이란 말로 이해하면 그만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궁금했다. ‘유채꽃 통째 갈아엎은 삼척시’라는 제하의 한 중앙일간지 기사를 클릭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무려 2,700명, ‘슬퍼요’는 그 4분의 1인 700명, ‘화나요’는 200명이었다. 나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걸 모르는 무대책, 무데뽀, 순진, 무책임, 기회주의적 낭만파였구나. 생사의 문제는 어느새 꽃 모가지가 트랙터 쟁기에 댕강댕강 베어지는 처참함 정도는 초월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댓글만도 1,000개가 넘었다. 열에 일곱은 자기 눈 호강하겠다고 꽃놀이 나선 인간들에 대한 적개와 분노였고 삼척시의 과감한 행동은 칭찬받았다. 이게 우리에게 갑자기 닥친 ‘뉴 노멀 시대’의 생존법인가 보다. 다른 지자체들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말 안 듣는 인간들 땜에, 꽃들아 니네들이 무슨 잘못이니?” “전쟁 나도 꽃놀이 다닐래? 꽃으로 때려주고 싶네.” “벚꽃도 엎어라. 소방차로 물 뿌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삼척 시장, 대통령 시켜라.” “중앙정부도 저런 선제적 조치를 진작 내렸어야 했다. 어디에 문 열어준 대가다.” “당신의 인증샷 한 번에 시골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신다.”
유감이나 탄식의 댓글이 없는 건 아니었다.
“눈 한번 깜빡 안 하고… 정말 대단한 나라입니다. 외국이 칭찬할 만합니다.” “상춘객을 밀어 버려야지, 왜 죄 없는 유채꽃을.” “벌과 나비는 어쩌란 말이냐.” “아무리 그래도 트랙터로 밀어버린 건 제정신 아니다. 공무원은 효율과 속도만 우선한다.”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불 질러야 하나.” “갈아엎을 돈으로 알바생 고용해 감시하고 벌금 때리지.” “기름이라도 짰어야지, 유채나물도 얼마나 맛있는데….” “꽃도 살리고 사람도 살려라. 극단적 해결책은 우리를 더 두렵고 힘들게 할 뿐이다. 희망고문이다.”
마스크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요즘 잘 나간다는 선거 로고송이 우연히 들려왔다. “싹♫다♬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웃어야 합니까, 울어야 합니까.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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