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1>종교가 된 노래
어느 봄밤, 직원들이 퇴근한 어느 카페에 친구 세 명이 모여 서로 돌아가며 노래 부르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술잔 앞에서 반주도 없이 노래 하는 일은 20대 때, 방위로 근무하던 시절에나 왕왕 있었고 첫 번째 직장 다닐 때도 더러 있었으나, 어느 시기가 지나서는 오금 저리는 창피한 추억으로 정리되었었다.
그런데 그날, 서로의 노래가 듣고 싶다는 어떤 제안은 유달리 서정적이라서 어쩐지 도망칠 수 없었다. 그 동안 기계가 만드는 MR 반주에 익숙해 있다가 이렇게 벌거벗은 마음으로 부를 수나 있을까. 나의 소심한 성대는 협착 직전까지 오그라들었다.
먼저 30대 초반 친구가 노래를 골랐다. ‘배신자’. 예전에 어린 친구들은 노래하는 자리에서 누가 오래 전 노래를 부르면 노화와 연식 운운하며 자기들의 상대적 젊음을 두둔하더니, 언제부터인가 분위기 띄운다는 핑계로 ‘무조건’이나 ‘땡벌’ 같은 소위 세미 트로트(트로트가 실은 노래 장르가 아니라 박자를 말한다는 것은 논외로 치겠다)를 요란스럽게도 불렀다.
그때마다 나는 그럴 바엔 ‘빨간 구두 아가씨’나 ‘단골 손님’이 더 멋질 걸, 번지 수 잘못 찾은 선곡에 혼자 혀를 차곤 했다. 한명숙의 ‘눈이 내리는데’나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처럼 마음이 자욱해지는 나의 60년대 노래 취향이 문제라면 문제였겠지만.
어쨌든 그날 그 친구의 ‘배신자’ 선곡은 마음의 빈 곳을 찔렀달까, 귀가 쫑긋해질 만큼 기발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현대적이고 현재적인 노래들이 그 마음 속 음원을 가득 채운 ‘요즘 사람’이었기 때문에.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님아
가수처럼 능란한 비브라토(음을 상하로 가늘게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기법)는 없지만 척척하게 버무려진 목소리는 그 날 따라 버석버석한 우수를 주었다. ‘얄밉게’ ‘짓밟다’ ‘사나이’ ‘배신자’ 같은 고답적인 말들은 일종의 유머 같았다. 나도 그 노래를 가만히 따라 불렀다.
어쩌면 우리는 고립되기 위해 노래를 따라 부르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노래의 메시지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는, 이 노래는 아버지보다 더 큰 영향을 준 외삼촌한테서 배운 노래라고 주석을 달면서 외삼촌 집을 벽지처럼 뒤덮은 LP판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에 어떤 감정의 전시는 없었다.
그는 두 번째 노래를 골랐다. ‘누가 울어’. 그때 알았다. 그 노래들은 방송 프로그램‘미스터 트롯’ 출연자들이 부른 곡목이었다. 국가적으로 외출을 자제하던 그 주말에 그는 가족과 그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누가 우승할 것인지 열띠게 논쟁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자기 방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배달 피자와 넷플릭스로 시간을 때울 줄 알았다.
내 차례가 되어 나도 노래를 골랐다. 남인수의 ‘낙화유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노래를 부르던 중에 나는 제목을 생각했다.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낱말 하나에 모든 광경이 눈 앞에 펼쳐 보였다. 이 노래는 열한 살 때, 일제시대 배경의 만화에서 처음 보았다. 그 만화에서 늘 만취한 아버지는 밤길을 걸으며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마다 노랫말도 벌개진 그 얼굴 위를 구불구불 지나갔다.
나중에 노래를 찾아 듣고는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잔디를 얽어 꿈을 짓다니 너무 문학적이잖아. 심지어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라고? 어떻게 이렇게 해학적인 가사를 쓸 수 있지? 사람들은 ‘봄날은 간다’더러 대한민국 가요 사상 가장 아름다운 가사라지만 ‘낙화유수’도 못지 않았다.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자기의 가장 민감한 부분, 어떤 취약한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울한 부분, 희망 없는 부분, 부끄럽고 추한 부분까지. 동시에 노래의 작은 음계로부터 잠시 숨으려고 한다. 이틀 전의 수치스러운 에피소드, 기한을 넘긴 마감, 처리 안 된 송금, 마치지 못한 학업, 일그러진 사랑의 실험으로부터. 그렇다면 우리는 매번 노래 한 곡에 인생이 걸린 순간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우리는 신속하고 가차없는 생활의 언어 대신 느린 속도로 옛날 노래를 부르며 소요하는 이 시절을 헤엄쳤다. 우리들의 나약한 감정은 노래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선 말로는 표현되지 못할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계속 즐거운 것을 찾는다. 쾌락을 향한 몰두는 너무 본성적인 거라서 여기에 도덕을 운위할 자리가 없다. 그 동안 얼추 비슷하고 대체로 보잘것없는 현대의 삶 속에서 한국인의 즐거움은 먹는 것과 노래 부르는 것 사이에서 벌이는 줄타기와 같았다.
그러나 이제 노래, 무엇보다 예전 노래는 한국에서 가장 위풍당당한 종교가 되었다. 우리를 이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그 감정은 노래라는 계량되지 않는 장치에 매달린 채 독특한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 친구가 마음이 캄캄하고 기분도 어둑한 우리를 위한답시고 경쾌한 듯 경박하고 쉬운 듯 괴이한 요즘 어떤 트로트를 불렀다면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자기가 고른 특정한 음을 통해 노래를 들을 것이다. 한국 노래에 관한 나의 편협함은 그 옛날 변웅전이 진행하던, 손으로 차트를 넘기던 원시적 ‘금주의 인기가요’를 그리워한다. ‘아직도’의 ‘아’를 극적으로 파찰시키며 발음하던 이은하의 숙명성, 뭉게 구름처럼 밀려가던 조미미의 리듬감, 심수봉의 가사가 들추는 미궁 뒤편의 충동, 한 치 오차도 없이 ‘소울풀’하던 임희숙의 비브라토, 올이 풀리듯 치솟아 오르던 정훈희의 고음…. 처음 듣던 열두 살의 그 순간을 얼려 버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사가 떠오르는 노래들은 차라리 노동요 같았다.
대중에게 먹힐지 고심하며 시류를 타는 노래를 찍어내는 요즘 성인가요 비즈니스도 그들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지만 어떤 때는 성황당 북새통만 같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트로트 신의 영향력 있는 몇몇 가수들이 사운드 조잡한 데다 생각 있는 어른이라면 그렇게는 쓸 수 없는 저능한 가사로 가요를 만들어 번번이 히트했다는 게 지금도 어이가 없다.
인기 있는 노래는 당연히 그 시대의 감정을 포착할 것이다. 노래는 시대의 주제를 내포하는 더할 나위 없는 형태니까. 그러나 눈뜨고 보면서도 매번 어리둥절했다. 무슨 어떤 사고방식이면 저렇게 졸렬한 노래를 만들고 또 환호할 수 있지? 노래의 격은 어디서 찾아야 하고,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풍파의 와중에 녹음된 음악의 역사는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노래들을 즉각적이고도 무제한으로 마련해 두었다. 종일 유튜브를 연 채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다 보면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도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하진 않지만, 우리의 평소 감상 패턴과 선호 장르, 기분에 따른 플레이리스트를 진작에 간파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델의 슬픈 노래를 한 번 듣고 나면 곧 빌리 홀리데이를 거쳐 프란츠 슈베르트까지 우리의 사적인 유튜브로 실어다 준다는 것을.
노래를 듣는 행위는 그 동안 몰랐던 배경을 들려주기도 한다. 누군가 무심코 배호의 ‘이 순간이 지나면’을 듣는 중이라면 이 노래가 어딘지 암시로 가득하며, 또한 그 가수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음률과 단조로 이어지는 그의 후반부 노래를 찾아 듣는 동안 또 다른 발견을 할 것이다. 에코 없는 마이크에서 들리는 신체에서 이탈된 듯한 목소리, 오케스트라 반주도 브라스 밴드도 없이 재녹음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통렬한 목청.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노래 안에서 결코 마멸되지 않는 예민한 생명력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그 가수에 대한 낭만성을 꼭 안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온 신화라고 해도.
노래는 대부분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독선을 부풀리는 동시에 희망을 싹트게 하니까. 노래는 또 기도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스토리이기 때문에. 한 친구는 차 안에서든 소줏집에서든 ‘공항의 이별’이 들릴 때면 어떤 상념으로 멈칫하곤 했다. 그 노래의 익숙함과 그 순간을 대하는 친구의 모습은 그가 노래를 통해 어머니를 느끼던 방식을 부분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떤 노래는 맥락 없이 들릴 때도 그 공간을 가득 메운다. 한남동이나 신사동, 구석진 LP 바에서 불시에 손시향의 ‘이별의 종착역’을 들을 때면 가슴과 복부를 관통하며 흐르는 낡고 힘있는 파장을 느낀다. 그 순간의 오묘한 합일은 생각도 못했던 기억의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다. 각자의 고유한 기억은 한 움큼의 이야기와 연결되고,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낳아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이런 일은 자기가 직접 재생목록을 만드는 멜론 뮤직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것은 매일 늙는다. 그것이야말로 불안의 진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던 노래들은 요즘의 기계적인 음원 보유 방식으로부터 추방당해 마니아의 기억 에서조차 사라지기 직전, 폭발적으로 되살아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래들은 죄다 슬프게 들린다. 우리가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모순들-이별과 단절, 절망과 탄식-을 다시 일깨워주기 위해? 지금은 반드시 옛날이 되고, 지금 이야기하는 예전 것들은 그 시절엔 다 최신의 것이었다는 순환을 말해주려고?
어쨌든 그 시절 작사 작곡가의 작품에 감정적 다양성을 추가하고 싶은 프로듀서의 욕망, 그 노래에 자기 목소리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고 마이크를 통해 가다듬는 가수의 결정, 그리고 그 노래에 개인적 상징을 발견한 청자들의 감각은 실의에 빠진 요즘의 삶에 이자 붙은 선물이 되었다.
이충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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