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가을의 전설’에서 ‘초보 코치’로 변신한 박정권(39) SK 2군 타격코치는 요즘 “힘들다”는 말을 자주 꺼낸다. 코치 생활 3개월차인 지금도 선수별 특성을 파악하느라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라고 했다. 그나마 기술적인 고민은 좀 낫다. 무엇보다 힘든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본보와 만난 박정권 코치는 “지겨움의 연속”이라며 “많이 지쳐 있는 선수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훈련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수들의 기분을 살피는 방법에 대해선 “몸을 한번 툭 건드려보고 선수가 웃으면 ‘기분 괜찮네’, 반응이 없으면 ‘조금 이따가 다시 와야겠네’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현재 SK의 미혼 선수들은 2군 훈련 시설인 인천 강화 퓨처스파크와 인근 펜션에서 한 달째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철저히 외부인과 접촉을 줄이기 위해 숙소와 야구장만 오간다. 스프링캠프 기간을 포함하면 3개월째 반복된 생활이다. 박 코치는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1군과 평가전을 할 때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좀 생기지만 다시 강화로 돌아가면 떨어진다”며 “선수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게 급선무다. 기술은 다음 문제”라고 설명했다.
2004년 SK 유니폼을 입고 1군에 데뷔해 2019년까지 한 팀에서만 뛴 박 코치는 SK 왕조 시절의 주축이었다. 통산 성적은 1,308경기 출전에 타율 0.273 178홈런 679타점이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 ‘가을 남자’로 통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네 차례(2007ㆍ08 ㆍ10ㆍ18) 경험했고 2010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상(MVP), 2011년 플레이오프 MVP 등을 수상했다.
박 코치는 “어느덧 나이도 앞자리가 바뀌었다”면서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 현재 신분은 코치이지만 본인이 지도자라는 게 확 와 닿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선수에서 코치로 빠르게 태세전환을 했는지 몰라도 그라운드 위에 있으면 아직 선수 느낌도 든다”며 “운동하면서 땀도 흘리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배팅을 지켜보고 있다는 게 어색하다”고 말했다.
1, 2군 평가전을 위해 선수가 아닌 코치로 다시 찾은 SK 행복드림구장이지만 관중 없이 텅 빈 경기장에 선 탓에 박 코치는 “별 느낌이 없다”고 했다. 이어 “은퇴식이라도 해야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가을 남자’답게 은퇴식을 가을에 하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그는 “언제가 좋을 지는 모르겠다. 구단과 얘기를 나눠볼 일”이라면서도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도 괜찮을 것 같다”고 웃었다.
인천=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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