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車업체 셧다운 와중에 “위기를 기회로” 신차 생산 늘려
정몽구 회장, 12년前 금융위기 때 증산… 현대차 세계 5위로
글로벌 자동차 생산 공장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줄줄이 ‘셧다운’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공장을 ‘풀가동’하며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현장을 직접 챙기며 신차 생산을 독려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감산 대신 증산의 역발상을 통해 과거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었던 정몽구 회장의 길을 아들이 다시 걷고 있다.
3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은 특근을 재개한 지 약 한 달만인 지난 2일 완성차 생산현장을 방문해 감산·감축 대신 신차 생산·판매 확대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위기 상황인데도 경영 축소가 아니라 공격적인 생산을 지시한 것이다.
실제 울산공장은 지난달 7일부터 특근을 재개하며 차량 생산을 늘리고 있다. 특히 불황 타개책으로 선택 받은 ‘GV80’(울산2공장), ‘G80’(울산5공장1라인), ‘아반떼’(울산3공장) 등의 신차 생산라인은 ‘풀가동’에 들어갔다. 유럽에서 반응이 좋았던 ‘코나’(울산1공장), ‘투싼’(울산5공장2라인) 등도 울산공장에서 지속적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의 이런 행보는 미국, 유럽,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올해 생산 계획을 줄줄이 축소하고 재고 줄이기에 나선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벤츠, BMW,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은 현재 대부분 멈춰 섰다.
현대차 역시 국내와 중국을 제외한 모든 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다. 앞서 현대차는 부품(와이어링 하네스) 공급 부족,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등으로 국내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8만대 가량 생산 차질을 빚기도 했다. 수출마저 급감했다. 지난달 현대차 해외 판매는 23만6,000대로 전년 같은 달(32만대)보다 26.2%나 줄었다. 3월 미국에선 3만6,087대를 팔아 월 판매량으로 2010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정 수석부회장이 과감하게 증산에 나선 건 코로나19 회복 조짐과 동시에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특단의 전략이다. 특히 GV80, G80, 신형 아반떼 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신차들에 대한 하반기 미국 출시 일정도 예정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지나고 신차 수요가 회복될 때 곧바로 판매가 가능하도록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정몽구 회장이 추진한 전략과 비슷하다. 당시는 GM이 연방정부 구제금융을 받고, 크라이슬러가 매각되는 등 자동차 업계로선 최악의 상황이었다. 현대차 역시 큰 위기를 맞았다. 그 해 글로벌 판매량이 목표치를 크게 하회하면서 누적 재고가 106만대에 달했다. 국내외에서 4개월 내내 팔아야 할 물량이었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인력 감축이나 감산이 아니라 품질 향상, 마케팅 확대, 증산 등의 역발상을 실천했다. 그 결과 금융위기 이후 현대차는 급성장했다. 중·소형차 품질을 높인 덕에 미국, 일본차 점유율을 가져왔고, 판매량이 늘며 미국 앨라배마 공장 규모가 확대됐다. 덕분에 2010년 포드를 제치고 글로벌 완성차 업계 5위에 올라섰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금융위기 당시 세계 자동차 공장들이 생산을 줄일 때 베르나, 아반떼 등 중ㆍ소형차 생산을 늘리면서 시장 수요에 대비한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도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수출과 동시에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감산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남들이 움츠리는 위기의 시기에 과감한 돌파를 주문한 정 수석부회장의 이번 결단이 현대가(家) 특유의 도전정신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정 회장의 역발상을 옆에서 지켜봤던 정 수석부회장이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파고를 넘는다면 글로벌 5위 이상의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정 수석부회장은 현장 책임자로부터 생산 현황을 보고 받고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또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자고 독려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