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스스로를 ‘정치 덕후’로 평한다. 초대 대법원장이자 재야 정치인이었던 가인 김병로의 손자인 그는 20대 초에 개인비서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를 도우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는 그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최근 출간된 회고록에서 밝혔다. 하지만 박정희부터 문재인까지 여야를 넘나들며 요직을 차지하고 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낸 정치 궤적은 그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4년마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을 오가는 모습도 신뢰를 잃게 만든다.
□ 황교안 통합당 대표의 삼고초려로 총선을 지휘하게 된 김 위원장의 강점은 간결한 메시지다. 그가 취임 일성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슬로건을 던지자 보수진영에서는 ‘역시 김종인’이라며 환호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통렬히 꼬집는 발언이 자유 우파 유권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며 ‘김종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당초 그가 삼세번의 선거 신화를 만들지 않을까 내심 긴장했으나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국면을 반전시킬 비전이나 이슈가 아닌 증오를 부추기는 퇴행적 행태가 중도층을 견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다.
□ 선거 막판에 급작스럽게 구원투수로 불려 나온 터라 김 위원장과 당의 손발도 맞지 않는 모습이다. 정부의 9조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에 당에선 “총선용 돈 풀기” “표 구걸”이라고 비난하는데, 김 위원장은 한술 더 떠 “100조원을 투입하라”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을 “1977년 우리나라에 도입된 의료보험 제도를 만든 당사자”라고 자찬하자 당장 의료보험 확대에 한사코 반대한 세력이 바로 통합당의 전신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 정치권에서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총선 이후의 김 위원장 행보다.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책임은 당 대표에게 지우고 오는 7월의 전당대회 당권을 염두에 뒀을 거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것처럼 차기 대선의 ‘킹 메이커’ 역할을 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아예 지난 대선에서 ‘셀프 출마’ 했듯이 ‘킹’을 꿈꿀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초 “청년 정치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다짐이 자취를 감춘 듯해 씁쓸하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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