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지난해 말에 중국 우한에서 처음 시작된 코로나19는 이제 전 세계로 퍼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양상을 띠면서 감염자가 100만명, 사망자도 5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예방 백신과 치료제가 없어 대부분의 나라들이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의존하고 있어 팬데믹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코로나19에 대한 치료 효과가 명백히 확인된 약물은 없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여 효과와 안전성까지 입증하는 데에는 보통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하루빨리 치료제가 필요한 현 시점에 신약 개발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선 신약 개발 과정을 살펴보자. 기초 탐색 과정을 거쳐 신약 후보물질이 도출되면 그 효능과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임상시험은 크게 전임상과 임상으로 구분된다. 전임상 시험은 동물을 대상으로 약리ㆍ물리화학시험, 독성시험, 약동력학시험, 제제설계 등을 실시하는 단계다.
전임상 시험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단계에 돌입한다. 사람에게 투여해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하는 임상1상, 대상 질환자 가운데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단기 투약에 따른 부작용 및 예상 적응증에 대한 효과를 탐색하는 임상2상, 치료대상이 되는 질병에 대한 시험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해 통계적인 검증을 통해 약물에 대한 최종평가를 내리는 임상3상 등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약 허가를 받고 시판을 시작한 이후 희귀하거나 장기 투여 시 나타나는 부작용을 확인해 안전성을 재확립하는 임상4상까지 거쳐야 한다. 따라서 신약 개발은 막대한 예산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어려운 과정이다.
신약 개발이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최근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되던 렘데시비르,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되어 온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등이 코로나19 치료제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에 시판 중인 약물이나 개발 중에 약효 입증에 실패한 약물들을 재평가하여 새로운 약물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기법을 ‘약물재창출’이라고 한다. 약물재창출은 약물독성검사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었고 임상 승인에 필요한 독성자료도 가지고 있으므로 곧바로 새로운 적응증에서 효과를 보이는 용량을 확인하는 임상 2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는 고혈압과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효과를 입증하는데 실패했지만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약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미녹시딜은 더 극적인 개발 과정을 거친 약물이다. 당초 위궤양 약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동물실험 중 효능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지만 혈압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여 고혈압 약으로 개발 시판되었다. 그런데 장기 복용자 중 60~80%에서 발모가 촉진되는 현상이 나타나 이번에는 탈모치료제로 재 변신하게 되었다. 피나스테라이드는 남성호르몬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를 억제함으로써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개발 판매되었지만 용량을 5분의 1로 줄여 남성호르몬 과량 분비로 인한 탈모증에 대한 치료제로도 판매되고 있다.
국내 여러 제약사와 의료기관에서는 기존에 다른 효능으로 시판 허가를 받아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 중에서 코로나19에 효능이 있는 약물을 찾기 위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된 렘데시비르의 코로나19 치료에 대한 효능을 알아보기 위한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또한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 중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자 임상시험도 승인하였다. 이에 따라 이르면 수개월 내에 코로나19 치료에 효과적인 약물이 나올 가능성이 열렸다.
2009년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국내에서만도 확진자 75만명, 사망자 263명이 나왔던 신종플루의 범유행은 당시 빠르게 개발된 백신 및 치료제 덕분에 종식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치료제와 백신을 상당 부분 다국적 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나라의 고위 공무원이 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를 찾아가 협조를 부탁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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