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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투표 결과가 국민의 수준이다

입력
2020.04.0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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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결정해온 국가의 흥망성쇠

복잡한 ‘선택 방정식’ 마주한 우리 유권자

참정권 위에 잠자는 사람은 ‘3류 국민’

[저작권 한국일보]21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관계자들이 선거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21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관계자들이 선거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곧 부활절(12일)이고, 총선 투표일(15일)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러더스’(BOB)가 생각난다. 부활절과 투표, 전쟁 드라마라는 이질적 소재를 묶는 키워드는 ‘무리’ 혹은 ‘집단’이다. 부활절은 거짓에 넘어간 우중(愚衆)의 결과물이고, BOB에는 나쁜 리더를 물리치고 좋은 지도자를 선택한 집단이 나온다. 이번 총선은 우리 국민의 수준이 드러나는 시험대이다.

2001년 미국 HBO가 10부작으로 내놓은 BOB는 1억2,500만달러 제작비의 대작이다. 노르망디 상륙부터 1945년 8월까지 제101공수사단 506연대 이지 중대의 전투와 인간관계를 그렸다. 한계 상황에서 극단으로 엇갈린 지휘관들의 행태를 그려내 미국에서는 리더십 설명 교재로 활용된다. 1편 ‘커래히’(Currahee)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그렇다. 무능력한 중대장(허버트 소블 대위)이 유능한 부하(리처드 윈터스 중위)를 쫓아내려 하자 하사관들이 연판장을 돌려 반대한다. 연대장(로버트 싱크 대령)은 “항명은 총살감”이라면서도 소블을 전출시킨다.

반란은 결과로 입증됐다. 윈터스는 전공을 거듭 세워 1년도 안 돼 계급이 소블을 앞섰다. 유능한 지휘관을 모신 하사관 대부분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BOB 하사관들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이끈 ‘위대한 세대’(Great Generation)의 일원이다. 1920년대 대공황을 견뎌냈고 1950~1960년대 미국의 번영과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한 진취적인 무리였다.

부활절을 초래한 2,000년 전 유대 군중은 정반대다. 성경대로라면 선동가의 거짓말에 속아 구원자를 팔아 넘겼다. ‘예수와 바라바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제의에도 바라바를 선택했다. 성경은 군중의 배신조차 하느님이 예정한 역사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어리석은 군중이 스스로를 망친 점은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대인의 선택은 파국적 결과로 이어졌다.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이 뿔뿔이 흩어져 2,000년 넘게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위대한 영웅이 홀연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에는 집단이나 군중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 상황도 많다.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伯樂ㆍ천리마를 알아보는 전문가)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영웅이 될 인물은 늘 있었지만 군중이 알아보지 못해 사라진 적도 많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입에 발린 말로 ‘국민은 늘 위대하다’지만, 국민의 잘못된 선택으로 국운이 꺾인 경우도 많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 국민은 어떤 수준을 보일까. 부활절 유대인보다 BOB 하사관에 가까워지려면 아주 어려운 다음의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먼저 경제위기 원인이 뭔지를 꿰뚫어봐야 한다. 야당은 지난 3년의 경제 실정에, 여당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광풍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쏟아내는 ‘돈 풀기’가 국가부채만 늘리는 위험한 정책인지, 경제를 살리는 묘수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어느 나라와 비교할지도 중요하다. 여당은 마스크도 끼지 말라고 했다가 감염자가 급증한 미국과 유럽을, 야당은 초기에 중국인 입국을 막은 대만과 비교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하는지(친여 위성정당), 정권 핵심을 겨냥한 수사를 밀어붙이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켜야 하는지(야당)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는 어찌 되어가는 건지, 한미정상이 통화하고 나면 청와대와 백악관 설명 내용이 꽤 많이 달랐던 이유는 뭔지도 생각해야 한다.

열흘 뒤 판가름 나겠지만, 결과를 예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복잡한 문제를 어떤 쪽으로라도 풀고, 투표장에 갔다면 ‘3류 국민’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에게 등급이 있다면, 2020년 4월의 ‘3류’는 투표하지 않은 국민일 것이다. 다행히 선관위도 안전한 투표를 보장하기 위해 비닐장갑, 소독제 비치 등 최대한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조철환ㆍ뉴스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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