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4>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
최근 5년간 악성게시물 형사사건 판결문 1401건 분석
‘피해자 정신적 고통’ 자주 언급되지만 솜방망이 처벌
‘성관계한 사이’ 얼굴ㆍ연락처 뿌린 직장동료는 집행유예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다.”
한국일보가 최근 5년간 악성 게시글 또는 댓글(악플) 관련 형사사건 판결문 1,401건을 분석한 결과, 판사들이 가해자의 형량을 결정하면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문구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었다. 악플 피해자들은 꿈을 포기하거나 이사를 해야 했고, 성적 모욕이나 욕설 등의 충격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후유증이 컸다.
여성 A씨는 정신적 고통을 넘어 살던 곳과 직장까지 떠나 도망치듯 숨어 살아야 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자신의 나체 사진을 지인에게 배포하는 바람에 A씨 사진이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됐다. 급기야 그 사진은 A씨가 일하던 업계에까지 돌았다. 그것도 모자라 남자친구는 인터넷에 A씨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도 남겼다. 인천지법은 2018년 A씨의 전 남자친구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미혼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B씨의 직장동료는 B씨를 가리켜 ‘나와 성관계를 한 사이’라는 글과 함께 B씨 사진과 연락처를 모바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공개했다. B씨는 그러나 가해자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며 알고만 지내던 사이였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2016년 가해자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C씨는 평생 키웠던 소중한 꿈마저 포기해야 했다. 지인이 C씨의 사진과 음란한 이미지를 합성한 뒤, 성적 비하와 욕설이 담긴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기 때문이다. C씨는 대중 앞에서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악플 충격’으로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등 후유증이 심각해 결국 음악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수원지법은 2018년 가해자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D씨 부부는 악성 게시글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이 망가졌다. D씨 부부는 부당한 방법으로 한옥 수선보조금을 지급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웃 때문에 무려 3년 동안 ‘온라인 테러’를 당했다. 이웃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 등에 D씨 부부가 ‘전과자이고 폭행상습범이다’ ‘봉고차에 여학생을 싣고 다니면서 강제 성매매를 한다’ 등의 허위 비방글을 1,000회 이상 게시했다. 전주지법은 2015년 가해자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여성 방송인 E씨 역시 악플러의 공격으로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회원이 E씨에 대해 성적 모욕 및 욕설과 함께 성인물을 촬영하라는 내용의 악성 게시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부산지법은 2015년 가해자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며 “게시된 글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천박한 내용으로, 여성 방송인인 피해자는 심각한 공포와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명문대 출신 작가인 F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F씨는 대학 동문이 학내 구성원들이 이용하는 게시판에 자신을 ‘찌질이’ ‘파렴치한 인간’ 등으로 모욕해 큰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게시판에 F씨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 가해자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증가하는 악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악플이 무례한 표현을 넘어선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병철 선플재단 이사장은 “악플은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고 때로는 생명까지 앗아 간다”며 “자판을 두드리면 살아 있는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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