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업계의 두 빅딜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 전반이 고사 위기에 처하자 사태 이전부터 추진돼온 2건의 항공사 인수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선 인수자 측이 ‘승자의 저주’를 피하려는 과정에서 자칫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공룡 LCC’가 부담스러운 제주항공
저비용항공사(LCC)간 빅딜로 ‘공룡 LCC’가 탄생할 거란 기대를 모았던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이스타항공의 대규모 구조조정 움직임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이 인수 전에 최대한 부실을 덜어내 인수자인 제주항공의 부담을 줄이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3일부터 희망퇴직 및 정리해고를 시행해 5월 말까지 전체 직원 1,683명의 45%가량인 750여 명을 감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실제 이뤄진다면 업계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이다. 또 보유 항공기 23대 중 10대를 줄이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비행기를 반납한다는 건 제조업으로 따지면 공장 문을 닫는 것과 같다”며 “최악의 경우 제주항공 인수 전에 이스타항공이 청산돼 인수 계약 자체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스타항공 직접 지원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가 마무리되는 다음달 수출입은행과 함께 제주항공에 2,000억원의 인수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 자금은 희망퇴직 보상 및 위로금, 미납 임금 등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인수자금 납입 미루는 HDC 속내는
HDC현대산업개발 역시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 납입일을 무기한 연기하며 분분한 추측을 낳고 있다. 경우에 따라 계약금 2,500억원을 포기하고서라도 인수를 중단하려는 포석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날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7일 유상증자 자금납입일에 대해 ‘거래 종결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로 정정 공시했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HDC현산이 7일 아시아나항공에 1조4,700억원을 3자 배정 방식으로 투입해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하는데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 중국 등 6개국에서 진행 중인 기업결합심사 일정이 지연되면서 유상증자 일정도 미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선 HDC현산의 고심이 깊어진 결과라는 중론이다. 업계에선 당초 5월로 예정돼 있던 경영권 인수가 7월 이후로 늦어질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업계에선 HDC현산이 업황 침체를 이유로 아시아나항공의 실질적 매각주체인 산업은행 측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차입금 상환 연장과 회사채 지급 보증 등이 거론되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고 나서면 직원 1만명이 넘는 아시아나항공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며 “싱가포르 정부가 싱가포르항공을 살리려고 16조원을 투입하고 미국은 항공업계 지원에 70조원을 지원하는 사례들을 감안해 정부도 보다 과감한 항공업계 자금 수혈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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