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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가 지난달 11일 예고 없이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7개 그룹 계열사에 권고문을 보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삼성 최고경영진에게 요구할 최우선 준법 의제로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 3가지를 엄선해 의제별 개선안을 권고문에 담았다는 게 준법위 설명인데, 이 부회장에게 오는 10일까지 확답을 달라며 직접 요청한 내용만 추려보면 △경영권 승계 관련 과거 위법 행위 사과 △노동 관련 위법 행위 사과와 무노조 경영 방침 폐지 선언 △시민사회 신뢰 회복 방안 공표 등이 있다.
총 5개항으로 이뤄진 준법위 보도자료에서 이색적인 대목은 마지막 항이다. 위원회 활동을 이 부회장 형사재판(횡령ㆍ뇌물 혐의 파기환송심)과 결부하며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만큼 이 부회장과 계열사가 이런 우려를 불식할 조치를 마련해달라는 주문이다. 준법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 선고가 어떻게 나오든 위원회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존속을 보장해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출범 한 달 만에 삼성그룹 총수를 직접 겨냥해 사과 공세를 펴는 ‘원칙성’이 감시 대상에게 자기 조직의 보존을 청탁하는 ‘의존성’과 공존하는 상황은 준법위가 처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드러낸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내 핵심 계열사 7곳의 준법 감시 기구를 자임하고 있지만, 그 자격은 각 회사와의 자율협약이라는 임의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사무실과 지원 인력, 보수를 모두 삼성에 의존하다 보니 준법위는 일부 강성 비판세력으로부터 삼성의 ‘비선 조직’ 취급을 받는 수모도 겪는다. 준법위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형량을 낮추려는 시도에 동원되고 있다는 관측은 수다한 비판의 단골 메뉴다. 시민단체 대표격으로 준법위에 참여했던 권태선 위원이 소속 단체의 내부 반발로 위원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만 상당수의 관전자들이 동의할 만한 점은 준법위가 ‘약골’로 뵈진 않다는 것이다. 출범 전 기자회견 때만 해도 활동 개시 이후 발생한 준법경영 위반 사항만 다루겠다고 했던 이 조직은 2월 첫 회의에서 최고경영자에 대한 직접 조사권도 행사하겠다고 천명하더니 그 달이 가기 전 옛 삼성 미래전략실이 계열사 임직원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사안에 대해 회사 측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내며 ‘과거사’를 감시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지난달 삼성에 발송한 권고문은 총수의 직접 사과라는 파급력 있는 요청을 앞세워 이 거대기업의 ‘흑역사’에 한층 깊숙이 손을 뻗쳤다. 가장 민감한 대목은 단연 ‘과거 경영권 승계 관련 위법행위’에 대한 사과 요구다. ‘위법 행위=유죄 선고’라는 통상적 정의로 봤을 땐 200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건이 유일한 사과 대상이지만, 준법위는 형사상 무죄가 확정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건이나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도 염두에 둔 권고라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이 준법위 권고를 수용한다면 어느 정도 수위로 사과할지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준법위의 ‘강공’에 삼성 내부에선 당혹해하는 기색도 적지 않다. 물론 이마저도 ‘잘 조율된’ 퍼포먼스라고 빈정대는 시선도 여전하다. 준법위가 법률상 존립 근거가 없는 임의기구라는 태생적 한계를 부인하긴 어렵다. 기구의 영속성을 보장해 달라는 준법위의 요청에는, 2005년 ‘삼성X 파일’ 사건 이듬해 삼성이 자기쇄신 차원에서 발족한 외부 자문기구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 2년 만에 흐지부지된 전례가 감안됐을 성싶다.
다만 투명하고 단단한 설립 근거와 배경이 조직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하는 건 아니며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준법위도 같은 생각으로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적었을 것이다. ‘삼성 임직원, 그리고 우리 사회와 다 함께 만드는 변화가 가장 빨리 변화에 도달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위대합니다.’
이훈성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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