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고 물을 필요가 있을까. ‘내 집’을 갖고 싶다는데. 누구나 꾸는 꿈이다. 편안한 주거를 원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 한국인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웬걸, 아이러니다. “빨리 낡아라. 천장에서 물 새라.” 집이 불편해지기를 바란다! 재건축 보상을 노리는 쪽으로 욕망이 뒤틀린 것이다.
더 이상 한국인이 열망하는 내 집은, 편하게 사는 집이 아니다. 비싸게 파는 집이다. 다시 말해, 집을 사는 건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팔기 위해서다. 나를 팔기 위해서도 자가(自家)는 긴요하다. “내 집 마련은 사회적 지위 형성과 경제적 안전 획득이라는 이중의 가족 사업을 완수하는 토대가 됐다.”
1980년대 말 아파트 가격 폭등 때 변화의 단초가 마련됐다. 무주택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집값을 잡아달라. 나도 사고 싶다.” 소유 민주화와 주거 생존권 요구였다. 결실이 있었다. 주택 공급이 크게 늘었고 토지ㆍ조세 제도가 분배를 고려했다.
그러나 집 없는 이가 많이 줄거나 하지는 않았다. 집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아파트 값 급등기에는 주택 금융이 확대됐다. 정부가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주택자가 줄지 않고 다주택자가 늘었다. 결과적으로 몰아주기가 된 셈이었다.
중산층의 선택은 심플했다. 더 사자, 오히려 기회다. 집값이 떨어질 리 없다. 생존은 투기로 진화했다. 진보연(然)하는 자들도 집 문제에만은 철저히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경쟁을 해소하려 애쓰기보다 거기에 가세했고, 연대의 잠재력은 망가졌다.
이런 각자도생의 책임을 저자는 주거 시장을 승자 독식 구조로 만든 개발시대 정부에 묻는다. 성장을 위해 돈 쓸 곳이 많았던 정부는 집 지을 돈을 기업과 집 주인에게서 끌어왔고, 보상 차원에서 업자는 집을 팔아서, 집 주인은 오른 집값으로 각각 돈을 벌게 내버려뒀다. 관성은 여전하다.
내 집에 갇힌 사회: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
김명수 지음
창비 발행ㆍ384쪽ㆍ2만2,000원
책은 박사 논문이 바탕이다. 어렵다. 딱 부러지는 해법도 없다. 하지만 지금 현안은 구부러진 욕망의 원인 해명이다. 막고 꾸짖기만 한다고, 이전투구가, 공고해진 계층 구조가, 집에 대한 집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분석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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