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의 가상현실(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화제였다. 희귀 난치병으로 딸을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가 VR로 딸과 다시 만났다. 생전 딸의 목소리, 몸짓, 표정을 구현한 가상현실 속 딸과 재회한 엄마는, ‘진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하염없이 딸의 얼굴이 떠오른 허공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린다. 발전한 기술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하고 상실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지 보여준 사례였다는 찬사도 있었지만, 반론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같은 VR콘텐츠가 망자에 대한 집착이나 또 다른 상처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기술의 발전, 구체적으로 인공지능의 발전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는 SF가 가장 골몰하는 주제 중 하나다. 중국 작가 하오징팡의 소설집 ‘인간의 피안’은 정체성, 감정, 자유의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주제에 접근한다.
2016년 중편 ‘접는 도시’로 류츠신에 이어 중국 작가 두 번째로 SF최고 문학상인 휴고상을 수상, 중국 대표 SF작가로 떠오른 저자의 신작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천체물리학 석사,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가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을 구사하며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다.
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ㆍ강영희 옮김
은행나무 발행ㆍ420쪽ㆍ1만5,000원
단편 ‘영생 병원’은 죽은 어머니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는 인공지능 복제 인간이 과연 진짜 어머니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아들을 보여준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SF의 고전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복제인간에게 자신의 기억과 생명을 내주고 세상을 떠난 ‘진짜 어머니’, 그리고 죽은 어머니의 기억과 유전자를 물려받은 ‘가짜 어머니’. 진짜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선 지금 가족 곁에 있는 가짜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복제인간이, 어머니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힘들어할 가족을 위해 준비한 배려라면. 가짜 어머니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다른 가족들은 어머니의 쾌유에 행복해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이라면 누구라도 망설이게 될 딜레마를 그리며, 작가는 무엇이 ‘진짜’ 인간과 ‘가짜’ 인간을 구분 짓는지 묻는다.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은 이어진 단편 ‘사랑의 문제’에서 더욱 전면화된다. 인공지능에게 공격받은 한 과학자 이야기를 중심으로, 쉽게 감정적 동요에 흔들리는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나은 존재인지 되묻는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허덕이는 과학자,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우울증에 걸린 딸, 인공지능이 인간 행세를 하는 것에 분노하는 아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며 “왜 인간은 자살을 선택하는지” 궁금해하는 인공지능 간의 차이를 통해, 결국 불완전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
‘영생 병원’과 ‘사랑의 문제’를 비롯, 소설집 속 인간의 모습은 하나같이 인공지능에 비해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복제인간 어머니는 진짜 어머니보다 가족을 더 화목하게 결합시킨다. 최선의 답변만을 선택해 들려주는 인공지능 비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불필요한 나약함, 원시적인 감정, 한정적인 육체에 갇혀 있음에도 그 때문에 인간이 가장 위대한 존재일 수 있음을 그려낸다.
하오징팡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그 어떤 종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미래와 관련해서 내가 유일하게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고 말했다. ‘피안(彼岸)’에 있는 인공지능의 시선을 통해 통해 차안(此岸)에 선 인간의 자리를 오히려 선명하게 비춰보는 일. ‘인간의 피안’은 그렇기에 SF의 본령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책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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