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3>악순환 고리 끊는 대응책은 
 
지난해에만 악플로 고통 받고 있다며 경찰에 호소한 피해자가 1만6,000명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악플을 줄이기 위해선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강화, 학생과 교원의 사이버 윤리의식 의무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류효진기자
 
 2012년 인터넷 실명제 폐지 후 
 사이버 모욕 등 악플 사건 3배로 
 익명성 제한하는 법안 잇달아 발의 
 전문가 “악플러 서비스 이용 제한 
 초중고 ‘네티켓’ 교육 강화해야” 

악성 게시글과 댓글(악플)은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은 현재로선 전무한 상태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돼야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도록 한 제도)가 도입된 바 있으나, 2012년 8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함께 폐지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악플 관련 형사 사건은 지난 10여년간 급증했다. 경찰에 공식 접수된 사이버 명예훼손ㆍ모욕 사건은 2009년 4,752건에서 2012년 5,684건으로 늘어났다. 3년새 증가율은 20%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헌재가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을 내린 지 3년 후인 2015년에는 1만5,043건으로 치솟아 2012년 대비 무려 164.6%의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해에도 1만6,633건을 기록했다. 결국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이후, 수사기관에 접수된 악플 피해 호소 및 처벌 요구가 거의 3배나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경찰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례들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 발생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6,279명을 상대로 수행한 ‘2019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인터넷에서 언어폭력ㆍ명예훼손ㆍ성폭력 등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6%에 달했다. 4명 중 1명이 악플 피해자였던 셈이다. 반대로 ‘악플을 달아 본 경험이 있다’는 비율도 21.5%를 기록했다. 눈에 띄는 건 악플 피해자가 타인을 상대로 악플을 게시한 경우도 절반 이상(53.6%)이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 만큼, 악플이 우리의 일상에 만연해 있다는 의미다.

최근 사이버 명예훼손ㆍ모욕 사건 고소ㆍ고발 건수

이처럼 악플이 마구 쏟아지는데도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않다 보니, “처벌 강화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10월과 11월, 여성 연예인 설리(본명 최진리)와 구하라가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까지 잇따르면서 정치권도 악플 방지를 위한 입법 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작년 10월 박대출 미래통합당 의원이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인터넷 아이디의 풀네임은 물론, 이용자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도 공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용자의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악플 게시를 억제하자는 취지다. 또 포털 사이트ㆍ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표시 의무를 부과, 각 업체들마다 달랐던 아이디 공개 정책을 통일하고 준실명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했다. 박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언어폭력, 간접 살인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박선숙 민생당 의원도 정통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누구든 악플을 발견하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현재는 피해 당사자만 포털 등에 권리침해사실을 소명하면서 정보 삭제 또는 반박 내용 게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데다, 20대 국회 임기도 얼마 안 남아 있어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한 발 더 나아가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도 악플 근절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포털 사이트는 이용자가 몰리고 댓글이 활성화될 때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사업자도 일정 수준의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이미 이런 취지의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2018년 ‘SNS 내 법 집행 개선법’(NetzDG)을 도입했다. 타인 모욕과 범죄 모의, 민주주의 훼손 등 혐오 발언이 온라인에 올라오면 해당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이를 24시간 내에 삭제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이를 어기는 기업은 최대 5,000만유로(약 659억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지난해 페이스북에 벌금 200만유로(약 26억4,900원)를 부과하기도 했다. 프랑스 의회도 2019년 독일의 선례를 참고,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가 최대 125만유로(약 16억원)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다만 악플을 완전히 뿌리뽑으려면 이 같은 처벌 위주의 사후대책 못지 않게 ‘예방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네이버가 시행 중인 ‘댓글 이력제’처럼 악플러의 활동 이력을 공개하는 게 악플 예방의 첫 걸음”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지난달 19일부터 이용자가 작성한 댓글 내용, 삭제된 댓글 비율, 회원정보에 등록한 닉네임과 사진 등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 이진로 영산대 자유전공학부(신문방송학 전공) 교수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댓글 등 누적된 데이터를 기초 자료로 삼아 빈번하게 분쟁을 일으키는 사용자의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며 “악플을 달려는 심리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 건전한 온라인 문화를 익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윤수 부산교대 교수는 “현재 초등학생은 5, 6학년 도덕ㆍ실과 교과의 한두 단원에서만 사이버 윤리 교육을 받고 있고, 중ㆍ고교생도 기술ㆍ가정 교과나 재량 활동 시간에 네티켓을 배우는 게 전부”라며 “피상적인 교육으론 학생들에게 ‘악플은 중대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역시 “초ㆍ중ㆍ고교 교과 과정에 인터넷 에티켓을 가르치는 과목을 신설하고, 교육대와 사범대를 다니는 예비 교사들도 관련 과목을 필수로 수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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