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선거제 개혁’ 노무현 꿈 짓밟은 위성정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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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선거제 개혁’ 노무현 꿈 짓밟은 위성정당들

입력
2020.04.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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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원한과 증오의 정치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이근식 열린민주당 대표(왼쪽 다섯 번째)와 당원들이 29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 관계자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총선을 앞두고 두 위성정당 사이에 적통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뭐라고 생각하실까. 봉하마을에서는 민주당에 묻어온 시민당 사람들은 만나주고, 열린당 사람들은 덕담만 해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조국수호당’이라 불리는 이 당은 출범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공정과 공평,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만들겠다.” 어이가 없다. 이 꼴을 지켜봐야 하는 정신적 고문을 적어도 2년은 더 받아야 한다.

 ◇정신이냐 상표냐 

서로 다투는 듯하나 두 당은 어차피 선거 후 민주당에 들어가 하나가 될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위성정당을 둘이나 거느린 셈이다. 심지어 텃밭을 넓혔다고 은근히 좋아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조국수호당’의 이미지를 열린당에서 가져간 것도 민주당에게는 나쁘지 않을 게다. 중도층은 중도층 대로 시민당에 묶어 놓고, 극렬지지층은 열린당에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쌍끌이 정치망 조업으로 바닥 표까지 샅샅이 훑어감으로써 작은 정당들의 씨를 아예 말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선거제 하에서는 정당이 정확히 지지율만큼의 의석을 받는다. 한국에선 10%의 지지를 받아도 의석은 고작 2% 남짓. 무려 8%를 양대 정당이 빼앗아버린다. 선거제 개혁의 취지는 이 구조적 불공정을 바로잡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둘이나 거느리는 바람에 이 알량한 2%의 의석마저도 위태로워졌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지난 4년 간 유지되어온 다당제는 무너지고, 다시 지역대립에 뿌리를 둔 양당제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회귀할 것이다.

문제는 두 위성정당이 이런 정치적 퇴행을 하면서 전직 대통령들의 이름을 판다는 데에 있다. 두 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두 대통령의 꿈은 우리의 선거제를 되도록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가깝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 꿈을 짓밟은 이들이 그 분들의 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이 아니다. 그들의 손에서 두 대통령은 마케팅에 필요한 ‘상표’로 전락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선거대책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반당한 노무현의 꿈 

유고집 ‘운명이다’에는 2004년 총선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의 심경을 담은 글이 실려 있다. 거기서 노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현실을 이렇게 한탄한다. “개선된 것이라곤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지지율로 나누기 위해 도입한 1인2표제 하나뿐이다. 그것도 국회가 만든 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때문에 겨우 도입할 수 있었다.” 시민당과 열린당은 그렇게 어렵게 도입한 알량한 ‘1인2표제’마저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묘역을 찾은 이들이 노무현의 정신을 유린해 버린 것이다.

이런 구절도 있다.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거기서는 “정책개발보다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선거운동방법이 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문제다.”

이어서 해법을 제시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그에게 선거제개혁은 “단순한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였다. “나는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가수 정태춘이 지난해 5월 23일 경남 김해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모공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 

‘선거구제도 바꾸는 것이 권력을 잡는 것보다 중요하다’던 노무현의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민주당은 원내1당의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 자기들이 도입한 선거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상징자본뿐, ‘노무현의 철학’ 따위는 애초에 필요 없었던 것이다. 사실 선거법개정도 그들이 내켜서 한 일은 아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검찰개혁. 선거법개정도 실은 ‘공수처’를 도입하려면 소수야당들의 협조가 필요하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나선 것뿐이다.

사실 ‘공수처’는 고위권력층 사이의 파워게임에 관련된 문제라 서민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개혁의 최우선적인 과제가 된 것은 물론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친노그룹의 원한 때문이리라. 물론 그 원한은 대중이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는 결국 구속되었다. 정의는 회복되었다. 개혁도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원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표적만 바뀌었을 뿐. 그들의 ‘증오’는 자신들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향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일까. 원한과 증오의 정치적 효용 때문이리라. 실제로 대중의 원한과 증오는 지금 조국사건, 감찰무마와 선거개입, 라임펀드 등 권력을 향한 검찰의 칼을 막는 데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윤석열 저주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는 ‘대깨문’들. 원한과 증오의 감정은 워낙 강렬하여 애초의 표적이 사라지면 다른 대상으로 ‘전이’해서라도 자신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노대통령은 유언으로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벌써 이 사태를 예견했던 것일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22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니체는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말한다. 주인의 도덕은 능동적ㆍ창조적이다. 주인은 스스로 선함으로써 상대를 악하게 만든다. ‘나는 선하다. 고로 너는 악하다.’ 반면 노예의 도덕은 수동적ㆍ반동적이다. 노예는 상대의 악을 통해서만 자신의 선을 확보한다. ‘너는 악하다. 고로 나는 선하다.’ 니체에 따르면 노예의 도덕은 핍박당한 자의 ‘원한’(ressentiment)에서 나온다고 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노 대통령의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라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민주당은 그 동안 자신을 선하게 만들어주는 가치들을 내버리고 줄곧 원한의 정치만 해왔다. ‘저들이 악하므로,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선하다.’ 무슨 짓을 해도 선한 자신들을, 검찰이 수사하겠단다. 이를 막기 위해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비롯된 원한과 증오를 슬쩍 그의 죽음과는 무관한 검찰로 돌려놓았다. 열린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자기를 기소한 검찰총장을 공수처 수사대상 1호로 지목했다. 공수처가 친문의 사적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철저히 이용해 먹는다. 노 전 대통령은 죽음으로써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기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친문은 그의 죽음에서 ‘우리만 도덕적일 필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성했다. 친노는 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을 비판하던 ‘입진보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은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들은 대중의 원한과 증오를 부추겼다. 노무현의 ‘깨어 있는 시민’은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외치는 네트의 폭도로 변했다.

노무현을 ‘운명’으로 끌어안은 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세상은 노무현의 꿈에서 더 멀어졌다. 한편에서는 ‘증오’를 선동한다. “일본 아베 정권을 옹호하며 일본에는 한 마디 비판도 못하는 미래통합당. 우리 국민들은 이번 선거를 ‘한일전’이라 부른다.” 민주당의 선거운동 매뉴얼이란다. 다른 편에서는 ‘원한’을 분출한다. “(문 대통령)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고, 임기 끝나면 오랫동안 교도소 무상급식 먹이면 된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통합당 공식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얘기란다.

선거제를 바꾸면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노무현의 이 소박한 꿈은 짓밟혔다. 선거철마다 그의 무덤 앞에 늘어서는 그 자들의 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정치는 다시 그가 헤어나오고 싶었던 그 늪에 빠져버렸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원칙을 지키는 바보들이 사는 세상의 꿈도 이제는 사라졌다. 특권과 반칙에 능숙한 영악한 자들의 세상에서 바보는 그냥 바보일 뿐이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은 실은 그를 닮은 모든 바보들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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