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지역ㆍ동네 따라 의료 간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을 강타했다고 하지만 그 충격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신종코로나 의심증상을 보인 정모(17)군이 지난달 18일 오전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입원 5일만에 숨졌다. 면역물질이 과잉 분비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의심됐지만,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정군이 처음 들렀던 경북 경산의 한 병원 관계자는 “신종코로나가 의심됐고, 음압 병실이 없어 받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정군이 국내 음압 병실 80% 가량이 모인 도시에 살았더라면 생을 달리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확진 판정 후 자가 대기 중 숨지기도
대구ㆍ경북에선 시설과 인력 부족 등으로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하거나 확진 판정을 받아도 입원하지 못하는 일이 잇따랐다. 대구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초 대구지역에선 한때 2,000명이 넘는 확진자들이 집에서 대기해야 했다. 음압 병상은커녕 일반 병상도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경증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가 전국 15곳에 마련되고 신천지 신자 전수검사가 마무리 되어서야 병상 문제는 완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확진 판정을 받은 74세 남성은 집에서 머물다 사흘 뒤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서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서 병원을 나오지 못했다. 지난달 1일 오후에는 77세 여성과 70세 여성, 6일엔 78세 남성도 확진 판정 후 입원대기 중 사망했다. 입원 대기 중 사망이 속출하자 대구시는 다른 지자체에 병실 배정을 읍소해야 했다. 일부 환자들이 경남, 광주 등 원거리 병원에 입원했다.
◇빈약한 의료인프라, 경북 치명률 전국 2배
지방의 빈약한 의료인프라는 치명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경북도에 따르면 6일 0시 현재 주민등록주소지 기준 경북지역 신종코로나 확진자는 1,271명으로 이 중 49명이 숨졌다. 3.9%의 치명률로, 전국평균(1.8%)과 대구지역 (1.9%)의 두 배가 넘는다. 대남병원과 요양병원 등 고위험군 환자 비율이 높은 탓도 있지만, 열악한 의료환경이 치명률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2016년 기준 인구 1만명 당 경북지역 병원급 의사 수는 5.2명으로, 서울(16.9명)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120명의 확진자가 나온 경북 청도대남병원도 이 같은 한정된 자원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집적화 했다가 화를 당한 사례다. 청도군은 지역 종합병원으로 개원한 대남병원 좌우로 군립 노인요양병원과 건강관리센터를 붙였다. 전국 최초로 원스톱 의료 서비스가 가능한 ‘협진’ 모델을 구축했다고 군은 홍보했지만 시설 규모를 감당할 만한 시스템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서 집단감염 사태를 불렀다. 청도 주민 김모(58)씨는 “이번 일로 병원이 문을 닫으면 지역 의료서비스는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고 했다.
◇서울도 동네별 천차만별
25개의 자치구가 모인 서울에는 선별진료소가 74곳에 설치돼 있다. 구별 평균 3곳으로, 1,000만 서울 인구에 비하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접근성이 강점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응급의료 취약지도로 본 농촌 vs 도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자치구들은 병원ㆍ소방서 등 응급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최고의 병원들이 밀집한 이곳에서도 의료 서비스 격차는 동네별로 현격하다. 쪽방 거주민이나 노숙인, 저소득층 등이 대표적이다. 쪽방 주민, 노숙인 등을 방문진료 하는 홍종원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은 “최근 환자 한 명이 병원 3곳을 전전한 끝에 진료를 받았다”며 “무료급식이 중단돼 주민들 건강상태가 악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병원 진료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설상가상, ‘사회적 거리두기’는 쪽방촌으로 향하던 의료 봉사진들의 발길도 끊어 놓았다. 서울 북부지역 한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외부 의료봉사는 중단된 상태”라며 “상담소 간호사들이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뛰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언제, 어디서 응급상황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자치구들은 코로나19 예방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창신동, 돈의동 등 쪽방촌이 밀집한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취약한 보건 환경을 감안해 이틀에 한번 방역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등에게 마스크, 손소독제 등 구호품을 지원하고 있다”며 “그러나 의료 지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기관 확충ㆍ지역의료역량 높여야
같은 하늘 아래서도 천양지차인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공공의료체계 강화가 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시장 논리로 보면 인구 밀도가 낮은 농촌이나 저소득 지역에선 종합병원 유지가 어렵고, 의료서비스 질도 보장할 수 없다”며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공공의료체계가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감염병 전문병원과 같은 특수병원이 아니더라도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기능을 하는 병원을 우선 정착시킨다면 위기 시 활용 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청도=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대구=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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